망각은 꽃가루처럼 나리다 망각은 꽃가루처럼 나리다 여국현 낮잠 속 꿈처럼 함박눈이 내린 삼월 오후 도시의 저녁 바람결엔 고향 떠나온 이의 서늘한 한숨이 쓸려 날렸다 예기치 못한 칼바람에 옷깃을 여민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 치고 지방대학의 통학버스에서는 졸던 학생들이 강변으로 쏟아져 내렸다 눈과 안개..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1.03.24
새벽에 깨어 새벽에 깨어 여국현 비바람이 치는 새벽 잠든 아이들의 방문을 열어본다 나란히 모로 누워 다리까지 같은 모양으로 올리고 두 아이 함께 잠들어 있다 얼마만인가 나는 또 얼마만인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은 모습으로 새근거리며 잠 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1.02.27
두려운 것은 두려운 것은 여국현 황단보도를 건너 골목길로 그는 사라졌다 정지된 자동차들과 리어커 사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건 떠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카페 앞 노천 의자에는 빈 자리가 가득했다 극장 옆 나무에는 빈 가지가 가득했다 정거장 사람들은 맹목적인 기다림 속에서 조용하고 쓸쓸..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1.02.24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여국현 사랑한다는 것은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넓어지고 끝없이 이해하고 참고 늘 무슨일에건 웃어줄 수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하다가 한없이 옹졸해지고 좁아지고 끝없이 궁금해하고 혼자 속으로 묻고 자주 사소한 일에 울컥 화를 내기도 하다가 홀로 돌아 앉아 속앓이를 하는 것, 이..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1.02.08
엘리제를 위하여 엘리제를 위하여 여국현 한해 중 가장 추웠다는 겨울 밤 동물원 놀이공원 빈 산책로를 따라 켜진 가로등은 서로를 마주 비춘 채 창백하게 떨며 섰고 동물 우리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운동복 차림의 사내들이 빠르고 우스운 걸음으로 잽싸게 지나갈 뿐 동물원 놀이공원은 찬바람..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0.12.17
환기 환기 여국현 산간지방에 폭설이 내리고 은회색 구름 사이 새벽 햇살이 밤 사이 얼어 붙은 아파트 지붕 위 눈에 부딪혀 반짝이는 아침 환기를 한다 안방 작은방 문간방 대문까지 문이란 문은 남김 없이 활짝 열고 갇혔던 공기를 놓아준다 거실 베란다 부엌 내방까지 창이란 창 끝까지 모두 밀어 열고 막..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0.12.09
모래성 모래성 여국현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리 높게 쌓아도 모래성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한 순간의 바람 한자락만으로도 물결 한조각 스쳐만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안타까워 할 일 아니다 슬퍼할 일 아니다 하늘까지 오를 수 없는 일 시작이 곧 끝이었던 일 아무리 공들여 쌓아도 결정적 균열이 없어도 ..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0.11.20
종묘에서 종묘에서 여국현 아취빛 하늘에 걸린 시간의 고리를 타고 펼쳐져 새들도 비상을 멈춘 고즈녁한 대기를 보듬고 그늘 진 정전 처마에 다소곳이 머물다 살아있는 이들이 발 딛고 선 대지의 티끌 한점까지 남김없이 휘감아 덮은 비칠듯 가리듯 반투명한 은회색 가을 햇살처럼 하늘거리는 침묵의 장막 속..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0.11.19
나무 나무 여국현 나무가 하늘을 향해 쉼 없이 가지를 뻗는 것은 멈추어 서는 일의 두려움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끝간 데 없는 허공 그 어디도 자신의 길이 아닌 공중으로 구불구불 한걸음씩 그러나 단호하게 가지를 뻗어 자신의 길을 내는 것은 그처럼 멈춤 없이 가는 것만이 허공의 무게에 꺾여 세월의 바..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0.11.19
Crack 크랙 여국현 노량진 지하철역을 내려서다, 본다 파란 하늘을 매몰차게 가르는 고압선들 하늘과 함께 금빛 63빌딩도 그 옆 고층아파트도 여지없이 갈리고 흠칫 놀란 눈으로 다시 보니 수산시장 낡은 건물들 벽에도 미세한 크랙들이 줄줄이 벽을 타고 끝 없다 돌아오며 보는 눈 닿는 구석구석 새롭고 단.. Texts and Writings/My poems 201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