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모래성

그림자세상 2010. 11. 20. 22:40

모래성

 

여국현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리 높게 쌓아도

모래성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한 순간의 바람 한자락만으로도

물결 한조각 스쳐만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안타까워 할 일 아니다

슬퍼할 일 아니다

하늘까지 오를 수 없는 일

시작이 곧 끝이었던 일

아무리 공들여 쌓아도

결정적 균열이 없어도

모래성은 허물어지게 되어 있는 법

헛되이 마음 쓰지 말아라

 

나는 생각한다

 

하여 모래로 쌓는 것이다

단 한순간의 방심만으로도

단 한순간의 나태만으로도

허물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인듯 최선을 다하여 쌓지 않으면

모래성은 

한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슬픔 속에서 기쁨을

고통 속에서 행복을

순간 속에서 영원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는 것은

불현듯 다가올 끝을

두려워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언제가 올 그 마지막 순간이

지금일 수도 있으리라는 절박함 때문이다

오늘은 살아 있으리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우리 삶은 

시작 되었을 때 이미 끝이 예정된

모래성 쌓기

 

오늘도 나는

수북하게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래성 지천인

바람 거센 삶의 바다에서

한 알 한 알 모래를 모두어

모래성을 쌓는다

 

예정된 시간조차 허물 수 없을

견고한 모래성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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