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여국현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리 높게 쌓아도
모래성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한 순간의 바람 한자락만으로도
물결 한조각 스쳐만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안타까워 할 일 아니다
슬퍼할 일 아니다
하늘까지 오를 수 없는 일
시작이 곧 끝이었던 일
아무리 공들여 쌓아도
결정적 균열이 없어도
모래성은 허물어지게 되어 있는 법
헛되이 마음 쓰지 말아라
나는 생각한다
하여 모래로 쌓는 것이다
단 한순간의 방심만으로도
단 한순간의 나태만으로도
허물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인듯 최선을 다하여 쌓지 않으면
모래성은
한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슬픔 속에서 기쁨을
고통 속에서 행복을
순간 속에서 영원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는 것은
불현듯 다가올 끝을
두려워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언제가 올 그 마지막 순간이
지금일 수도 있으리라는 절박함 때문이다
오늘은 살아 있으리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우리 삶은
시작 되었을 때 이미 끝이 예정된
모래성 쌓기
오늘도 나는
수북하게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래성 지천인
바람 거센 삶의 바다에서
한 알 한 알 모래를 모두어
모래성을 쌓는다
예정된 시간조차 허물 수 없을
견고한 모래성을 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