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망각은 꽃가루처럼 나리다

그림자세상 2011. 3. 24. 22:15

망각은 꽃가루처럼 나리다

 

                         여국현

 

 

낮잠 속 꿈처럼 함박눈이 내린 삼월 오후

도시의 저녁 바람결엔

고향 떠나온 이의 서늘한 한숨이 쓸려 날렸다

예기치 못한 칼바람에 옷깃을 여민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 치고

지방대학의 통학버스에서는 졸던 학생들이

강변으로 쏟아져 내렸다

눈과 안개에 희뿌옇게 가려진 강

다리를 덜컹거리며 건너온 지하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침과 한숨소리가 눈에 섞여 날리는

버스정거장에서 펼쳐든 책의 한 구절에

바람에 쓸린 눈이 길을 잃고 내려와 앉았다

*"망각은 꽃가루처럼 나렸다"*

감은 눈을 뜨기도 전에

꽃가루처럼 혹은 눈가루처럼 마음이 흩날렸다

세상은 중심을 잃고

어제와 그제 사이에서 비틀거리고

사랑을 저어한 여류 시인의 고통과 희열이 나즈막히 들려왔다

꿈처럼 나린 함박눈도

함께 졸며 내린 지방대학 통학생들도

덜컹거리며 한강 철교를 건너는 지하철도

고개를 숙인 채 삶의 칼바람을 비스듬히 견디는 사람들도

눈가루에 날려 사라져 갔다

그 모든 풍경의 한 모퉁이에 발 딛고 비켜 서 있던 나도

눈가루에 날려 사라지고 싶었다

 

낮잠 속 꿈처럼 함박눈 내린

꽃피는 춘삼월 저녁의 정거장에서

꽃가루처럼 눈가루처럼 내리는 망각에 묻히다

 

*forgetfulness fell like spollen. - from Toni Morrison, 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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