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랙
여국현
노량진 지하철역을 내려서다, 본다
파란 하늘을 매몰차게 가르는 고압선들
하늘과 함께 금빛 63빌딩도 그 옆 고층아파트도
여지없이 갈리고
흠칫 놀란 눈으로 다시 보니
수산시장 낡은 건물들 벽에도
미세한 크랙들이 줄줄이 벽을 타고 끝 없다
돌아오며 보는 눈 닿는 구석구석
새롭고 단단한 것에도
낡고 오랜 것에도
어김없이 틈새를 만들며 또렷한
크랙
크랙들
당당한 고층 아파트 사이
파란 하늘을 또렷하게 가른 비행의 흔적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을 끝 없이 두동강 내며
건물과 건물 하늘과 세상 사이
곧고 가늘게 끝없이 갈라놓는 전선들
기울어가는 담벼락을 무수하게 헤집으며
꿈틀거리는 가늘고 긴 미세 균열
아스팔트 바닥 쩍하니 가르며
검은 입 벌린 모진 빈틈
길게 나뉜 철로를 스치며 건널 수 없는 단호함으로
이쪽 저쪽을 가르며 지나가는 지하철
강 위로 단단하게 곧추 서 강을 가르는 철교
그 철교 강철구조에도 가득한 미세 크랙들
손 귀 눈 각기 따로 세상을 차단한 채
제 일 제 소리 제 그림에 붙박혀
등 돌리고 선 사람들 사이
싸늘한 얼음 유리 크랙들
언젠가 그 숱한 크랙들
쩍하니 갈라져
쏟아질 것 쏟아지고
깨질 것 깨지고
갈라질 것 갈라지고
부서질 것 부서지리라
그러나 두려운 건
밖의 균열이 아니다
환하고 투명한 렌즈에 투영되는
가늘고 긴 흐릿한 노이즈처럼
문득 새로 생긴 손금처럼
우리 마음에 흐릿하게 자리한 채
심장이 뛰고
숨을 쉴 때마다
폐와 심장을 찔러대는
하나의 미세 크랙
두려운 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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