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Crack

그림자세상 2010. 11. 17. 00:09

크랙 

 

여국현

 

 

노량진 지하철역을 내려서다, 본다

파란 하늘을 매몰차게 가르는 고압선들

하늘과 함께 금빛 63빌딩도 그 옆 고층아파트도

여지없이 갈리고

흠칫 놀란 눈으로 다시 보니

수산시장 낡은 건물들 벽에도

미세한 크랙들이 줄줄이 벽을 타고 끝 없다

 

돌아오며 보는 눈 닿는 구석구석

새롭고 단단한 것에도

낡고 오랜 것에도

어김없이 틈새를 만들며 또렷한

크랙

크랙들

 

당당한 고층 아파트 사이 

파란 하늘을 또렷하게 가른 비행의 흔적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을 끝 없이 두동강 내며

건물과 건물 하늘과 세상 사이

곧고 가늘게 끝없이 갈라놓는 전선들

기울어가는 담벼락을 무수하게 헤집으며

꿈틀거리는 가늘고 긴 미세 균열 

아스팔트 바닥 쩍하니 가르며

검은 입 벌린 모진 빈틈

길게 나뉜 철로를 스치며 건널 수 없는 단호함으로

이쪽 저쪽을 가르며 지나가는 지하철

강 위로 단단하게 곧추 서 강을 가르는 철교

그 철교 강철구조에도 가득한 미세 크랙들 

손 귀 눈 각기 따로 세상을 차단한 채

제 일 제 소리 제 그림에 붙박혀

등 돌리고 선 사람들 사이

싸늘한 얼음 유리 크랙들

 

언젠가 그 숱한 크랙들 

쩍하니 갈라져

쏟아질 것 쏟아지고

깨질 것 깨지고

갈라질 것 갈라지고

부서질 것 부서지리라

 

그러나 두려운 건

밖의 균열이 아니다

 

환하고 투명한 렌즈에 투영되는 

가늘고 긴 흐릿한 노이즈처럼

문득 새로 생긴 손금처럼

우리 마음에 흐릿하게 자리한 채

심장이 뛰고

숨을 쉴 때마다

폐와 심장을 찔러대는 

하나의 미세 크랙

 

두려운 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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