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42

쪽빛 바다에 떠도는 한 조각 붉은 마음(3)

기다림 속에 번지는 붉은 색 바다가 아닌 뭍에 자리한 박경리의 묘소에는 붉은 꽃이 피었다. 누가 가져다놓았는지 봉분 곁에 붉은 수련 하나가 고무통에 담겨 있었다. 묘소에서 보면 한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데 미륵산과 장군봉이 좌우에 버티고 있다. 젊어 시인을 꿈꾸었다는 소설가는 이 세상이 외..

쪽빛 바다에 떠도는 한 조각 붉은 마음(2)

불러주는 이의 꽃, 쪽빛 그러나 바다의 색은 중구난방이다. 에메랄드이건 코발트블루이건 울트라마린이건 바다는 정작 색의 명명을 개의치 않는다. 이 딸의 예술인이 가장 즐겨 일컫는 바다색은 쪽빛이다. 쪽빛은 하늘색이기도 하다. 통영의 하늘과 바다는 쪽빛, 그 알 듯 모를 듯한 색의 웅숭깊음으..

쪽빛 바다에 떠도는 한 조각 붉은 마음

세속과 성시는 어디에 있는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다. 통영은 통영의 하늘과 통영의 땅 사이에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빚어지는 풍광이 예술을 낳을진대, 통영의 예술은 땅보다 바다에 크게 빚진다. 통영이 자랑하는 팔경을 보라. 미륵산, 통영운하, 소매물도, 달아공원, 한산섬, 남망산, 사량도, 용머..

산을 떠났나, 산이 떠났나

시인 조용미의 시를 읽다가 가슴에 와닿은 한 구절이 입에 익었다. 바로 이 대목.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어본 자는 알 수 있다 숲의 밖으로 난 길이 사람을 다시 산속으로 이끈다는 것을 산길에 사람이 없다. 숲 밖의 사람소리 들린다. 산책자는 숲 밖을 기찰하다 다시 산속으로 들어온다. 그가 사람과 ..

붓에게 띄우는 오래된 사랑가

해 바뀌면서 '이것 참 대단하구나' 싶은 귀한 책을 얻었다. 세 권이 한 질로 구성된 이 서권은 부피가 두툼하거니와 제목이 고풍스러워 읽기도 전에 겨울날 화톳불 곁에 앉은 느낌을 준다. 제목은 [한국문방제우시문보 韓國文傍諸友詩文譜]이고, 편저자는 서예가이자 문인화가로 한묵의 장에서 탐구력..

잊혀진 화가, 잊을 수 없는 사람

여름날 과수원에서 금방 따온 듯한 검자줏빛 포도송이가 막사발에 담겨 있다. 황톳빛 막사발은 못생겨서 정겹다. 아가리는 이지러지고 굽은 뭉툭하다. 시골 인심처럼 무던한 그릇이다. 기우뚱한 막사발을 감싸고 있는 붉은색 배경은 손때 묻은 담장마냥 따사롭다. 자그마한 정물화에 불과하지만 사람 ..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었구나

김훈의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 부른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보여준다. 살점을 파고드는 추위와 간장을 끊어내는 참언이 뒤섞여 남한산성으 사힙칠 일은 현생의 지옥도와 다름 없다. 그러나 병자호란의 참상은 청나라에 투항하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한 치욕은 삼전도비 수립의 날을 기다려..

동풍에 쫓기는 배꽃 만 조각

그림을 그릴 때도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매화 그림은 '일지一枝의 매梅'가 으뜸이다. 고고한 기품은 한 가닥의 매화로 족하다. 양주팔괴의 일원인 화가 이방응은 매화 그림에 이런 시를 붙였다. 눈에 들기는 어지러운 천만 딸기 마음엔 남기는 단지 두세 가지 그런가 하면 남송의 마린은 엄청 큰 ..

부드럽고 구수하고 어리석고 아름다운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를 모르는자에게 재즈의 맛을 알려주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태백은 "술 취해 얻는 정취는 깨어있는 자에게 전할 수 없다"고 읊었다. 김 추사는 "난초 그림의 기이한 법식은 아는 자만 안다"고 단언했다. 그렇다. 모르는 자는 모르고 아는 자는 아는 경지가 있는 법이다. 어디 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