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참 애석한 빈자리

그림자세상 2010. 8. 12. 23:39

오주석, 이 분 참 애석하다. 그는 미술사학자로, 쉰 살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신문기자를 거쳐, 호암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 등을 지냈고 전통미술에 관한 저술과 강의를 병행하면서 열정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하직했으니 미술계로써는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의 안목과 식견, 글솜씨는 남부럽지 않았다. 대표적 유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좋은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의 행복'을 사무치도록 묘사했고, 이땅에 태어난 화가들의 예술적 유전자를 떳떳하게 자랑한 역저다. 아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인 최순우 선생 이후 오주석만큼 한국미를 곡진하게 설파하는 전도사를 만나기 어려웠다.

 

그가 쓴 또다른 저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이름값을 한다. 그의 강연을 정리한 이 책은 전통회화의 아름다움이 갈피마다 차고 넘친다. 뱀뱀이 널찍한 저자의 미덕이 좋은 글감을 만난 까닭인지 행간 깊숙이 자신감이 배어 있다. 우선 글이 수월하고 편안하다. 입말을 그대로 옮긴 책이라 독선생을 마주한 듯 가르침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작품 하나를 놓고 분석은 치밀하되 설명은 친절하다. 저자는 옛 그림 감상자에게 딱 한마디 말을 명심하라고 전한다.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심불재언) 보되 보는 것이 없고(시이불견) 듣되 들리는 것이 없다(청이불이)"는 것. 그는 "보고 들을 때는 옛사람의 눈과 귀를 빌리고, 느낄 때는 옛사람의 머리와 마음을 얻어라"고 독자에게 다짐받는다.

 

어떤 예술도 간과하는 자의 눈에는 무덤덤할 수밖에 없다. 참말이지 사랑해야 보게 된다. 서두르지 않아야 들어온다. 저자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첩]을 보여주며 어중치기 삼상자를 꾸짖는다. 저 유명한 <씨름>에서 쓰름꾼이 어느 쪽으로 자빠지는지, 다음 판에 나설 후보 선수가 누구인지, 등장 인물 스물두 명의 표정과 행색을 꼼꼼히 뜯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단원이 왜 그림 속에 손이 발 모양을 엉터리로 그려놓았는지, 그 이유는커녕 잘못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얼치기 구경꾼이 수두룩하다. 단원의 '잘못'을 저자는 당시 그림 수요자인 서민을 위한 장난스런 배려이거나 우뇌가 발달한 화가의 실수라며 재미난 진단을 덧붙이지만, 공부 많이 한 사람보다 여유를 가진 사람이 그림에서 꼭 보아야 할 것을 본다는 점을 유독 강조한다. 그 여유는 시간을 거슬러 당대의 풍속에 푹 젖고 싶은 자의 속정에 다름 아닐 터이다.

 

저자는 호기심을 위해 곳곳에 해학과 궁금증을 심어놓는다. 단원의 <마상청엥도>에서 시종은 '롱다리'인데 선비른 '숏다리'로 표현한 연유는 이 책을 읽어야 안다. 바위곁에서 나비를 바라보는 고양이와 패랭이꽃, 제비꽃 등을 그린 작고 귀여운 그림 <황묘농접도>가 왜 '생신을 맞은 주인이 여든 노인이 되도록 청춘처럼 곱게 장소하고 하는 일 뜻대로 이루어지길 빈다'는 길고 긴 해설을 낳는지, 이 책을 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렇다고 흥미로운 읽을거리만 좇는 책도 아니다. <이재 초상화>로 알려진 그림이 기실 손자 이채의 늙은 시절 초상화임을 밝혀나가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끈질긴 탐구욕이 감탄스럽다. 선인의 사유체계를 알아야 온전히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며 음양오행을 풀어주고, 정선의 <금강전도>를 태극의 구도로 설명하는 저자의 속내는 옛 그림에 어설프게 미친 자는 미칠 수 없는 성심의 경지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을 독자는 책을 덮을 때 오주석의 빈자리가 쓸쓸해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