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42

방 안에 꽃 들여 놓으시지요

일본의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한국에 애독자가 많다. 메이지유신의 영웅을 그린 [료마가 간다]로 일본의 '국민작가'가 된 그는 조선 도공의 삶을 소재로 한 [고향을 어찌 잊으리까]로 우리에게 낯익다. 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그의 한국 기행문 두 권을 낸 적도 있다. 책이란 신통해서 글이 마음에..

입 다문 모란, 말하는 모란

한번 떠나간 잠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릴없이 문득 서가를 본다. 서가에 꽂힌 책들은 앵돌아앉았다. 집게손가락으로 책등을 죽 훑어나간다. 잠시 손이 멈춘 곳, 몸피 튼실한 책이 눈에 들어온다. 먼지 낀 종이상자를 벗기자 푸른 장옷을 걸친 옥골이 드러난다. 손가락 점고고 간택한 이 책이 오늘 ..

연꽃 있는 사랑이야기(2)

여인의 표정은 깜찍하고 새침하다. 뾰로통한 낯빛처럼 보이기도 한다. 살집이 도톰한 얼굴에 눈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다. 오른쪽으로 잔뜩 몰린 눈동자도 기막히다. 그녀는 어깨 위의 연꽃을 곁눈질로 살피는 낌새다. 물론 촛대에 꽃힌 촛불이 꺼지지 않는지 감시하는 눈초리다. 하지만 감상하는 이에 ..

지나가는 것이 지나가는구나(2)

귀 없는 돌부처는 아닌 게 아니라 절묘하다. 말하지 않을 뿐더러 듣지도 않는, 적요한 깨달음을 굴산사 폐허는 일깨우려는 것인가. 우리는 벌판 초입에 놓인 당간지주를 올려다보았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보물이다. 몸돌은 들까부는 장식이 없다. 덤덤하고 졸박한 모양새로 사라진 거찰의 위용을..

이중섭의 소가 맛있는 이유

잇속 챙기려는 작자들이 간롱을 떠는 통에 이중섭 그림이 한동안 혼꾸멍났다. 가짜가 진짜로 행세하고 섭치가 알천으로 둔갑햬씨 때문인데, 미술시장에서 애먼 그림이 매기가 떨어지고 이중섭의 명성을 홀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가까 그림이 활개쳐 세상을 속일지언정 그 작가의 삶과 작품이 덩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