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쪽빛 바다에 떠도는 한 조각 붉은 마음

그림자세상 2011. 1. 17. 02:04

세속과 성시는 어디에 있는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다. 통영은 통영의 하늘과 통영의 땅 사이에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빚어지는 풍광이 예술을 낳을진대, 통영의 예술은 땅보다 바다에 크게 빚진다. 통영이 자랑하는 팔경을 보라. 미륵산, 통영운하, 소매물도, 달아공원, 한산섬, 남망산, 사량도, 용머리에서 바라본 경치는 모조리 바다를 노래한다. 통영 사람은 땅에서 바다를 본다. 서 있는 곳은 달라도 전후좌우는 아득히 펼쳐지는 바다다. 그리하여 통영의 예술인은 지평선 보다 수평선에 친숙하다. 유치환의 시 <깃발> 가운데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은 수직의 깃발이 수평의 바다에 대한 향수를 고백한 대목이다. 통영의 예술인은 또한 수평선 맞닿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하늘을 동경한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유치환의 <행복> 중에서) 시인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고 털어놓는다. 통영의 세속은 바다색으로 설레고, 통영의 성시는 하늘빛이 위로한다.

 

 

삶의 몽환을 드러내는 노을빛

 

 

하늘이 노을에 비낄 때, 달아공원은 기다린 듯 활기를 띤다. 뒤늦게 해바라기하려는 나그네들로 북적인다. 바다에 사로잡힌 섬들이 족쇄를 풀고 운무 속으로 떠나니고, 물결에 가려 섬의 아랫도리는 보이지 않아도 섬은 박차고 오르는 기운으로 파도를 밀어낸다. 바다의 사슬이 헐렁해지는 틈을 타 섬들은 모처럼 탈출을 도모하는데, 폭양의 기세를 꺾는 해넘이는 한뉘의 장엄한 종장을 나그네 앞에서 펼친다. 달아공원에서 석양을 바라보면 우리네 삶이 허허롭다. 삶이 몽환표영몽환포영처럼 스러지고 저문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석양 아래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것은 '꿈의 거품'이자 '헛것의 그림자'다. 거품과 그림자로 본색을 드러낸 인생은 덧없다.

 

 

나그네의 심상을 처연하게 만드는 덧없음은 형상이 아니라 색깔로 구현된다. 한낮의 바다를 지배하던 에메랄드와 코발트블루는 생생한 실존이다. 그것은 현실을 영구히 지속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색깔이다. 그러나 스러지는 태양 아래에서 바다는 색깔을 바꾼다. 바다는 퍼플 또는 바이올렛이 뒤섞인 비현실적 색감으로 물든다. 그 색들은 형상의 끈질긴 구체성을 모호하기 짝이 없는 추상으로 내몬다. 석양은 이리하여, 형상의 정체성을 앗아버리는 시간의 수작이다. 시간의 거리낌 없는 농단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통영이 낳은 시인 김춘수는 일찌감치 석양에서 이승이 아닌 저승을 보았다. 그의 시 <청마 가시고, 충무에서>는 저승의 주소까지 일러준다.

 

 

저승은 남망산 저쪽

한려수도 저쪽에 있다

해 저무는 까치 소리를 낸다

올해 여름은

북신리 어귀에서

노을이 제 이마에 분꽃 하나를 받들고 있다

후후 입으로 불면

서쪽으로 쏠리는

분꽃도 저승도 어쩌면

해저무는 서쪽 하늘에 있다

 

 

저무는 시각에 비현실적 색감으로 드러나는 저승은 입으로 불어도 가닿는 서쪽에 자리한다. 해넘이에 바다는 느슨해지고 이마에 분꽃을 얹은 노을은 저승의 가벼움과 가까움을 확인시킨다. 통영에서 까마득히 먼 저 당나라 장안의 동남쪽 낙유원에도 노을은 어김없이 깔렸다. 시인 이상은 제왕 귀족이 환락과 유흥으로 날을 보내던 낙유원에 올라 노을을 보았다. 그는 이렇게 읊었다.

 

 

저물녘 마음 둘 곳 없으매

수레 몰아 옛 언덕에 올랐어라

석양은 끝없이 펼쳐져 좋으나

어찌하리, 황혼이 가까운 것을

 

 

저물어가는 하늘 끝은 보이지 않는데, 인생의 황혼은 가까이 보인다. 꿈과 헛것과 거품과 그림자가 또렷하다. 김춘수와 이상은은 통영과 장안에서 멀리 저무는 곳을 보며 삶 가까이에 있는 저세상을 예감한 시인이다. 석양이 번지는 달아공원에 서면, 현실이 비현실로 보이고 비현실이 현실로 보인다.

 

 

한려수도의 물빛 환희

 

 

나그네의 눈에 통영은 현실과 비현실의 틈새에서 돋가이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한낮의 미륵산에 올라가보라. 거품과 그림자가 사라지고 대신 생시의 높고 가파른 풍경이 다가온다. 그곳에서 한려수도를 내려다보면 멀리 욕지도와 연화도와 매물도가, 가까이 한산도와 사량도와 연대도, 비진도, 송도, 저도가 점점이 박혀 있다. 희부윰한 바다안개에 감싸인 섬들은 완강한 존재감으로 한낮의 난반사를 밀어낸다.

 

 

무엇보다 바다의 색깔이 눈을 찌른다. 그 바다의 물빛이 화폭으로 스며들어 전혁림의 그림이 되었다. 전혁림의 색채는 선연하다. 그는 뭐라해도 색체의 화가다. '다도해의 물빛 화가'란 별칭은 입발린 치사가 아니다. 그처럼 원색이 일렁이는 화면을 난만하게 구사하는 화가도 찾기 힘들다. 해 비끼는 서쪽 하늘 노을에서 저승을 본 김춘수마저 전혁림의 그림 앞에서 비로소 이승의 환한 얼굴을 보았노라고 증언한다. 그의 시 <전혁림 화백에게>이다.

 

 

전 화백

당신 얼굴에는 웃니가 하나 남고

당신 부인께서는

위벽이 하루하루 헐리고 있었지만

코발트블루

이승이 더없이 살찐

여름 하늘이

당신네 지붕 위에 있었네

 

 

화가 하인두는 전혁림 색의 살아 있는 촉감을 지적한다. 생전에 그는 전혁림의 그림에 대해 말하길 '비단 무늬의 피부를 펼치는 채색술'이라고 했다. 원색의 살결이 손끝에 만져진다는 이야기다. 전혁림 자신도 육성으로 고백했다. "미술에서 색을 누락하면 무슨 재미인가. 색은 각기 고유한 자립성이 있는데, 색을 사용할줄 모르는 민족은 멸망한다. 나는 그 색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 조화를 추구한다. 나는 칠십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한국적 색채를 알아냈다."

 

 

전혁림은 고향인 통영을 굳건히 지키는 원로화가다. 한려수도의 물빛 정감을 가슴에 품고 산다. 어느 평론가는 그를 '해양성 체질을 체득한 화가'라고 했고, '통여 앞바다에서 살면서 저 멀리 스킨디나비아나 지중해, 혹은 알래스카의 파도 소리와 교감한다'고 했다. 그가 통영수산학교를 나와 화가가 된 것을 기이한 사건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바다가 그림임을 모르고 한 소리다.

 

 

그는 뒤늦게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2002년 올해의 작가'가 되었다. 늦깎이 화가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는 사실 올백이 화가다. 제1회 국전에 출품해 유경채 화백과 대통령 상을 놓고 겨루었고, 제2회 국전에 낸 <늪>이란 작품은 국전 사상 최초인 비구상계열로 문교부장관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중앙 화단이 잊어서 그렇지 그는 그림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미술평론가 윤범모가 지적한 대로 그는 '철저한 무계보 무인맥의 자유인'이다. 서울과 절연한 채 향촌에서 전업화가로 살아온 그의 삶 전반기는 결핍과 적막이 지배했다. 그는 적막을 자청했다. 그는 말한다. "중앙 화단과 단절된 지역에 살며 나는 오히려 내 작품의 독자성을 쌓을 수 있었다. 예술은 선생이 필요 없다. 자기혼자 배우는 것이다." 70년대만 해도 그의 작품은 풍경화조차 어두웠다. 80년대 들어 화면은 경쾌 발랄한 낙천성으로 진입한다. "민화나 단청에서 느낄 수 있는 색채, 전통적인 선과 문양을 소재로 한 독창적인 색면 구성의 추상화를 구축했다." 윤범모의 분석이다. 때로 오방색이 춤을 추지만 그의 화면을 떠받치는 중추색은 통영의 짙푸른 바다색이다. 바다의 색이 다른 색을 불러들여 한바탕 마당굿을 펼치는 장면은 절로 신명을 돋우는데, 그리는 자와 보는 자의 데면데면한 침묵을 단숨에 깨버리는 천진한 낙천성이 전혁림의 붓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