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동풍에 쫓기는 배꽃 만 조각

그림자세상 2010. 8. 21. 01:32

그림을 그릴 때도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매화 그림은 '일지一枝의 매梅'가 으뜸이다. 고고한 기품은 한 가닥의 매화로 족하다. 양주팔괴의 일원인 화가 이방응은 매화 그림에 이런 시를 붙였다.

 

눈에 들기는 어지러운 천만 딸기

마음엔 남기는 단지 두세 가지

 

그런가 하면 남송의 마린은 엄청 큰 화면에 매화를 그렸다. 그것도 오른쪽 구석에 딱 두 가닥의 백매를 그렸을 뿐, 나머지는 다 비웠다. 일물다의일물다의는 동앵화의 오랜 법식이다. 또한 너무 자세하면 본디 꼴을 놓친다.

 

옛사람들의 절제된 미의식은 감탄스럽다. 이를 테면 이런 글. "산수를 보면서 그 흥취를 반쯤은 남겨둔다. 미인을 볼 때도 그렇다. 달빛 아래 주렴 사이로 본다." 요는 아쉬운 모자람에 자신의 마음을 즐거이 기탁하는 것일 터인데, 만화방창의 넉넉함보다는 '가녀린 가지 끝에 붉은 점 하나, 마음을 흔드는 춘색은 많을 까닭이 없겠지.'라는 구절과 딱 맞아떨어진다. 어디 미의식만 그럴 것인가. 사람살이도 다르지 않다. 지나치면 난잡해지고, 넘치면 문란해진다.

 

모처럼, 참으로 지나치고 넘친 책을 읽었다. 패션잡지의 여기자인 김경이 쓴 [뷰티풀 몬스터]라는 책인데, '심하다, 과하다'라는 말을 내내 중얼거렸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세속도시의 인정물태'를 야잡스러운 방식으로 그린 벽화다. 우리의 살이가 일지매처럼 향내 날리가 없다 해도 굳이 삶터의 악취에 코 박을 위악자는 드문 것 아닌가. 김경이 그려낸 벽화에는 거리의 지린 토사물과 구린 분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때론 뻔뻔하게 낭자하다. 향내를 애써 치지도외한 것은 아닐진대 위선과 위악과 권태와 황음과 허영만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매화의 옛 등걸처럼 삶의 터전이 노추와 남루로 점철될지언정 왜 우리는 돌아보면 봄바람에 날리는 매화꽃이 될 수 없단 말인가.

 

김경은 첫 꼭지 글에서 토로한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의 이유, 방 안에서 조용히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 파스칼의 이 말을 포스트잇에 큼지막하게 써서 침실에 붙여놓고 내린 그의 결심이 '나도 이제 그만 싸돌아다니고 싶다'다. 그런데 뒤에서 나오는 모든 꼭지의 글이 하나같이 '싸돌아다닌 보고서'이다. 그는 도시와 패션과 여자와 남자의 꽁공 사유화된 밀실을 헤집거나 까발리며 다녔다. 그가 그린 벽화는 핑거 페인팅이 아니라 풋 페인팅인 셈이다. 어지러운 발자국 사이에 화장 지운 도시의 맨 얼굴, 나신을 꿈꾸는 이 시대의 패션 감각, 내숭 없는 암컷, 거푸집 속의 수컷들이 여지없이 나뒹군다.

 

타인의 빗장을 무례하게 열어젖힌 김경은 자신의 자물쇠도 따고 들어간다. 남자와 밤을 함께 지내고자 작정한 여자가 느닷없이 "다음날로 미루자"고 했을 때 김경은 '아마 그 여자가 팬티와 브라의 컬러가 맞지 않은 짝짝이 속옷을 입었을 것'이라고 추단한다. '아무리 급해도 검정 브라에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분홍 팬티 차림으로는 곤란'하단다. 그래놓고 김경은 남자와 여행을 가기로 한 날, 친구가 홍콩에서 공수해 온 켈린클라인 러닝셔츠와 팬티를 건네받았다고 자복한다. 어찌 이리 심하고 과한가. 그는 능청스레 답한다. "멋진 속옷은 자신만의 훌륭한 비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봄에 심을 나팔꽃 꽃씨를 가을에 미리 사두는 것처럼...."

 

남자의 속내도 그 앞에서는 '꼼짝 마라'다. 그는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 드물게 만나는 야성적인 남자들이 나는 좋다. 충분히 배우고 익혔지만 이성이나 교양만으로는 제 몸을 지배할 수 없는 남자들 말이다. 그들에게는 수컷으로서의 매력이 있다"는 말로 '난봉의 효용성'을 은근슬쩍 편든다. 그러나 "중계방송을 보며....이종격투기를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남자들 중에 진짜 수컷이 몇이나 될는지 나로서는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며 아퀴를 짓는 대목에선 '소심한 텔레 보이tele-boy'를 위축시킨다. 속옷에 대한 발칙한 추론을 펴면서도 그는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남자들은 여자가 블랙티T펜티를 입었건 아줌마 빤스를 입었건 그저 소기의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인 동물이라고. 이 도시에는 풍문이 나돈다. 나도 들었는데, 그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 '뷰티beauty'가 아니라 '노블티novelty'란다.

 

심하고 과한 것이 통쾌하고 적실한 것으로 넘어가는 대목도 눈에 띈다. 바로 어느 여성 정치인을 위한 패션 제안이다. 김영은 비호감을 시니컬하고 맵짜하게 요리하는 데 특출한 솜씨를 보인다. 이 글은 인용하는 순간 휘발할 것 같아 소개하지 않겠다. 직접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래도 고명만 살짝 건져내어 입맛을 보여준다면, 이 여성 정치인에게 프라다나 질 샌더 브랜드는 제안하는 부분이 백미다.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한때 열성 공산당원이었으니 색깔론을 들고 나올 요량이면 자칫 제 도끼에 발등 찍히는 꼴이 될지 모른다며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 듯한 김경의 넉살은 홍소가 절로 터진다.

 

[뷰티풀 몬스터]는 과다한 텍스트다. 차고 넘치고 난잡하고 문란해서 책표지조차 빨갛다. 불온한 유혹과 희한한 이문이 그득하다. 그러나 이 책은 반양장으로 제본되어 있다. 벗겨보니 속표지는 파랗다. 다행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따져본다. 경보부박한 세속도시를 싸돌아다니면서 견문한 패관잡기라면 차고 넘쳐야 마땅하지 않을까. 김경은 동시대의 패관으로서 그 직분을 다했다. 현재 심사정이나 추사 김정희의 절제와 여백의 매화도보다 글쓴이는 어쩌면 히로시게가 그린 채색목판화 속 매화도를 선호한 것이 아닐까. 부유하는 세상사의 풍속으로 우키요에는 시대를 기록했다.

 

김경은 "설사 가짜라고 하더라도 예술가들의 그렇듯한 포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전혜린을 두고 "전쟁이 끝난 빈곤과 혜허의 시대에 트렌치코트 깃을 올려 세우고 자유의 분위기를 발산하면서, 명동에 나와 술을 마셨던 그 코케티쉬한 실존조의적 포즈만으로 예술가로 대접받이게 충분했다"고 썼다. 그래서 '뷰티풀 몬스터'인가. 아하, 보인다. 해지는 봄날의 강변, 배꽃 만 조각이 동풍에 쫓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