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자전거 여행-김훈 36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 - 경주 감포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무기의 꿈과 악기의 꿈은 다르지 않다. ------- 4번 국도는 경주 시내에서 토함산을 가로지르며 동쪽으로 나아가 감포 바다에 닿는다. 토함산 권역을 거의 벗어나는 어일리에서 4번 국도를 버리고 우회전하면 929번 지방도로이다. 929번 지방도로는 토함산 능..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안동 하회 마을(6)

안방은 물, 불, 밥, 생명 같은 원형질의 공간이다. 안방은 땅속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밑으로는 하늘과 통한다. 마루는 어떤가. 마루는 고래의 불길이 닿지 않고, 땅으로부터 일정한 높이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마루는 서늘하고, 불길이 닿지 않아도 습기가 없다. 마루는 안방보다 훨씬 사회화..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안동 하회마을(5)

옛집과 아파트 일상생활 속에서 공간의 의미를 성찰하는 논의는 늘 무성하다. 개항 이래 이 나라에 건설된 주택과 빌딩과 마을과 도시들은 모두 자연과 인간을 배반했고, 전통적 가치의 고귀함을 굴착기로 퍼다 버렸으며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의 편이 아닌 공간에 강제수용되어 있다는 탄식이 그 무성..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안동 하회마을(4)

살아 있는 건축 역사관, 봉정사 봉정사는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 기슭에 있다. 하회 마을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걸린다. 봉정사는 전국의 사찰 중에서 가장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을 보존하고 있다. 고려 중기에서부터 조선 초기, 중기, 후기에 이르는 각 시대의 건축물들이 저마다 그 시대 양식의 한 전..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안동 하회마을(3)

감추어진 삶과 드러나는 삶의 꿈을 동시 구현하는 집들 도산서원을 나선 발길은 하회 마을로 향하게 마련이다. 하회에 갈 때는 안동대 임재해 교수가 쓴 [민속마을 하회여행] 또는 [안동 하회마을] 같은 책을 읽어야만 하회의 두터운 문화적 층위를 이해할 수 있다. 임재해 교수는 하회의 아름다음이 '..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안동 하회마을(2)

나라에 세금을 낼 때는 언제나 평민들보다 먼저 냈으며, 진실로 예와 의가 아니면 남으로부터 조그마한 물건도 받지 않았으며, 예로써 받은 물건이라 할지라도 이웃이나 친척이나 또는 배우러 오는 제자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한 점도 집에 쌓아두지 않았다. 제자들을 '너'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제자..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안동 하회 마을

두레박으로 길어올린 물은 그 물을 퍼올린 사람의 생애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퇴계 이황(1501~1570)의 존영과 도산서원은 지금 천 원짜리 지폐에 인쇄되어 퇴계의 삶이나 체취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어보이는 세상 속을 유통하고 있다. 경북 안동 지녁을 여행하는 일은 퇴계의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

땅에 묻히는 일에 대하여 - 여수의 무덤들(2)

봄의 무덤들은 평화롭다. 푸른 보리밭 속의 무덤들은 죽음이 갖는 단절과 차단의 슬픔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 무덤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죽음은 바람이 불고 날이 저물고 달이 뜨고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편안한 순리로 느껴진다. 30년쯤 전 아버지를 묻을 때, 내 어린 여동..

땅에 묻히는 일에 대하여 - 여수의 무덤들(1)

모든 무덤들은 강물이 흐르고 달이 뜨는 것처럼 편안하다. 봄볕이 내리쬐는 남도의 붉은 흑은 유혹적이다. 들어오라 한다. 부드럽게 부풀어오른 붉은 흙 속으로 들어가 누워서 백골을 가지런히 하고 쉬고 싶다. 가끔씩 죽는 꿈을 꾼다. 꿈에 내가 죽었다. 죽어서 병풍 뒤로 실려갔다. 병풍 뒤는 어두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