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자전거 여행-김훈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안동 하회 마을(6)

그림자세상 2010. 12. 6. 01:58

안방은 물, 불, 밥, 생명 같은 원형질의 공간이다. 안방은 땅속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밑으로는 하늘과 통한다. 마루는 어떤가. 마루는 고래의 불길이 닿지 않고, 땅으로부터 일정한 높이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마루는 서늘하고, 불길이 닿지 않아도 습기가 없다. 마루는 안방보다 훨씬 사회화한 공간이고, 사회적으로 진화한 공간이다. 마루는 움집의 추억이나 땅속의 원형질로부터 먼 거리를 진화해왔다.

 

 

마루가 이룩한 진화의 내용은 그 서늘함에 깃들이는 공적 개방성이다. 그리고 마루가 이룩한 진화의 정도와 마루와 땅 사이의 거리, 그 빈 공간의 높이다. 사람이 신발을 벗지 않고도 편하게 걸터앉을 수 있는 높이에서 마루의 진화는 완성된다. 그러므로 개들은 마루 밑에 들어가서 땅에 배를 깔고 자는 것이 마땅하다.

 

마루 위를 지나는 대들보와 마루 천장에 드러난 서까래는 이 공정 개방성의 공간 위에 논리적 안정감을 부여한다. 그래서 마루는 세상을 맞이하는 공간이며, 더 넓은 공간과 소통되는 공간이다. 비록 작은 평수의 마루라 하더라도, 마루는 그 열려짐의 크기로 세상 전체를 향한다. 그렇게 해서, 안방에서 문지방을 넘어서 마루로 나올 때 우리는 더 크고 넓은 삶의 새로운 질감 속으로 들어선다.

 

 

 

오래된 살림집의 문짝들은 공간을 구획하고 차별화하지만, 격절시키지는 않는다. 미닫이문을 열고 드나들 때 사람들의 공간 감각 속에서는 이쪽과 저쪽이 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충돌하지 않는다. 미당이 문을 닫을 때, 문 밖의 공간은 제거되거나 격절되지 않는다. 문 밖의 공간은 당분간 저쪽으로 밀쳐질 뿐이다. 미닫이문은, 열려 있을 때나 닫혀 있을 때나 언제나 문이 갖는 소통의 기능을 수행한다. 미당이문은 옆으로 포개지면서 열리고 닫힌다. 미닫이문은 벽을 헐어내고 만든 통로가 아니다. 미닫이문은 애초부터 통로로 태어난 문이다. 이 문이 소통과 구획을 동시에 수행한다.

 

 

 

호텔이나 아파트의 여닫이문은 벽을 헐어내고 뚫은 문이다. 이 여닫이 문짝은 문 밖의 공간을 완벽히 차단하고 제거한다. 차단 기능이 클수록 좋은 문짝으로 꼽힌다. 아파트의 도어는 사람이 드나드는 순간에만 문이고 닫혀 있을 때는 벽이다. 그러니 문이라기보다는 벽에 가깝다. 드나들어야겠다는 욕망과 외부를 차단해야 한다는 욕망이 그 문짝 속에 기묘하게도 뒤엉켜 있다. 평생을 이 철벽 같은 문짝 안에 갇혀서 살아왔다. 아름다운 것들은 이제 액자에 담긴 그림처럼 생활과 떨어져 있다. 이 그림을 다시 삶 속으로 끌어내릴수는 없는 것인가. 그저 뒷짐지고 들여다보기만 해야 하는 것인가. 집 살 때 꾼 돈 이잣날은 흥부네 끼니 돌아오듯이 돌아온다.

 

 

 

안동 하회 마을이나 예안면의 옛집들을 기웃거릴 때, 오늘의 빈곤은 가슴아프다. 이 아픔 속에 좀더 좋은 미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