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국현
나는 노동자인가? 이다!?
제철공장의 3교대, 나는, 불안하다
미숙한 피아니스트가 처음 갖는 독주회를
지켜보는 피아니스트의 아버지나 어머니쯤 되는 사람처럼
겨울이 두 발은 걸어 간 건조한 토요일 오후
지하 십 이 미터, 모터의 굉음이 한 여름의 폭염처럼
사방에서 울려대는 두평 넓이의 작업실,
길쭉한 나무 위에서 나는,
불안하다.
일어서 아무데나 나가볼까,
싸늘한 나무의자 위에 흐트러져 누워버릴까,
발목에 단단히 묶여있는 안전화의 끈을 풀어 던지고
맨발로 콘크리트 바닥 위를 걸어본다.
에어컨을 켜본다.
빈 주전자를 벽을 향해 힘껏 던져본다.
러시아 사람의 낡은 시집 몇장을 신경질적으로 넘기다,
전화기를 든다, 버튼식 다이얼을
한겨울의 냇가 꽁꽁 언 얼음장을 깨듯 힘차게 두드린다.
--지금 거신 번호는 국번이 없거나--
천장의 나트륨등이 꺼진다.
나도, 꺼진다, 어둠.
무엇이든 잡아야할텐데 푹푹 빠지는 어둠말고
잡히는 것은 없다.
나트륨등이 꺼질 때보다 더 극적으로 켜지고
모터는 여전히 내 고막을 한겹한겹 찢어발기고 있다.
꿈을 꿀 수 있을까?
미끄러지듯 나무의자에 들어 눕는다.
심장이 제 멋대로 뛰고 있다.
심장의 한 벽이 세차게 허물어져 버리는 것을 느낀다.
피가 튄다.
유년의 강을 범람하던 황톳물보다 더 콸콸
피가 튄다, 튀어 두평 넓이의 작업실을 마음껏 범람한다.
숨이 막힌다, 편안한
익사.
찌르릉--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밖은 어둠일까?
나는,
살아있는 것일까?
나는,
기계?
나는,
노동자?
나는,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