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현상
여국현
직경 십 센티미터도 안 되는 강철배관 속으로 보내지는
압력 백 칠십 킬로그램 퍼 제곱센티미터의 기름은
핏빛이다
실재현상이라지만
기막힌 패러독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느단 강철배관 속의 핏빛 기름이
오십톤이 넘는 쇠롤을 굳건히 받치고 있다는 것이
보란듯 밀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그처럼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다는 것 또한
실재현상이라면
역시 기막힌 패러독스랄 밖에
시간과
공간과
현상을 초월해서
내려누르는 모든 것은
핏빛의 저항을 받는다는 것이
핏빛의 저항에 의해 들려지고야 만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