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dailylife

아침의 꿈

그림자세상 2011. 5. 30. 12:57

태현이가 꿈에 왔다. 두 번째다.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작은 골목은 예쁘고 아름다웠으며 정겨웠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나즈막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의 벽과 지붕은 아기자기한 조각품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와 태현이는 그 건물들과 조각품들을 사진 찍었다. 나는 태현이에게 카메라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세로로 선 건물 벽을 찍기도 했다. 옥상의 둥그런 쇠 구슬 모양의 조각이 반짝 빛났다. 골목에 함께 있던 젊은 여인들은 조각이며 건물을 보며 연신 감탄을 했다. 그들은 작은 카메라로 여기저기를 찍으며 환한 웃음을 웃었다. 둔중한 카메라와 스탠드를 든 몇몇 남자들은 말 없이 골목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태현이가 어딘가 가야한다면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출근해야 한다고 한 것 같았다. 나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러라며 여느때처럼 말로만 인사를 했다. 그러다가 태현이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태현이는 내내 추웠던가 보다. 내가 손을 놓자 태현이는 골목 저편으로 뛰어 갔다. 태현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키가 더 작아 보였다. 몸은 더 많이 여위어서 꽃무늬 모양의 셔츠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나는 태현이가 골목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다 보지 않았다.

 

그리고, 손학규씨가 나왔다. 몹시 가파른 언덕이었다. 주변에 무덤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묘원 같은 분위기의 몹시 가파른 언덕이었다. 풀이 가득했다. 키가 낮은 풀들이었다. 회색같기도 하고 은빛 같기도 했다. 몹시 가파른 그 언덕 위에서 그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앉은 중늙은이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그들도 그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풀밭에 앉아서 다른 어딘가를 보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가파른 언덕에서 그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 더러 몇몇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 옆을 지나면서 까마득한 언덕 아래로 떨어질까봐 두려웠다. 손으로는 연신 풀을 움켜쥐기도 했다. 마치 곧은 절벽에 매달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반대편 쪽에는 풀들이 더욱 무성했다. 굽은 나뭇가지들도 가득했다. 한 남자가 풀을 베고 있었다. 밀짚 모자 같은 모자를 눌러 쓴 얼굴이 몹시도 검게 탄 남자였다. 하얗고 검은 눈동자가 유난히 두드러졌다. 나는 그 사내를 사진 찍고 싶었다. 얼굴을 클로즈 업하고 나머지를 배경은 모두 페이드 아웃한 모습으로. 그러나 내 손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진을 생각하는 내가 꿈속에서도 우스웠다. 이내 나는 다시 가파른 언덕으로 미끄러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골목이 보였다. 좁은 골목이었다. 아까 그 골목과는 다른 골목이었다. 서점에서 사내는 만원짜리 책을 4천 4백원에 판다고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서점의 유리창엔 무언가 모를 기이한 모양의 그림이 담긴 포스터들이 가득했다. 고시촌의 한 골목 같았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런 서점과 주변의 사람들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그 곁으로 작은 오솔길 같은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은 아까 그 가파른 산허리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나는 그 길로 들어갔고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곤 다시 가파른 그 아래로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며 풀을 움켜쥐는 아슬아슬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아마 그때 쯤이었을 것이다. 꿈을 깬 것은. 손전화의 시계는 7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전화의 알람은 정확하게 7시에 울렸다. 알람을 눌러 끈 것도 기억한다. 그렇게 40분이 흘렀다. 꿈은 바로 그때 꾼 것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이를 닦고 급하게 세수를 하고 사과와 참외를 먹고 집을 나섰다. 꿈은 여전히 생생했다. 학교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손전화에 메모했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이렇게 또렷한 꿈도 드물다. 오늘 아침 나는 늦잠을 잤다. 그 동안 꿈을 꾸었다. 태현이가 두 번째로 나타난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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