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dailylife

끝나지 않은 마지막 수업

그림자세상 2010. 12. 18. 02:29

지난 월요일, 직업 군인으로 학업을 병행하던 두 명의 4학년이 수강생의 전부였던 야간 전공 과목의 마지막 수업을 했다. 학기 첫 시간에 두 학생은 직업 군인으로서 학업을 병행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하면서 근무와 훈련, 또 예고 없이 실시되는 비상 대기 등으로 인해 수업 시간에 정확하게 오지 못하거나 빠지는 날이 있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내게 양해를 구했다. 피치못할 경우라는 전제 하에 사정이 허락되는대로 가능한한 이해하면서 한 학기 수업을 진행했다. 부득이한 경우 수업 대신 과제와 리포트 제출로 수업을 대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 문학작품을 영화화 한 작품들을 보고 비교하는 과목의 특성상 일정 부분 리포트로도 가능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 그것을 가능하게도 했다. 그랬던 수업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수업 시작 시간이 지나고 한 30여 분 늦게 두 학생이 도착했다. 계획했던 진도를 다 마치지 못한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한 학기 내내 단 두 명뿐인 수업의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는 생각에 강의실에서 수업하는 대신 자리를 옮겨서 하자고 제안했다--사실 우리가 수업하던 영문학과 전용 멀티미디어 강의실은 최신 시설이었지만 우리에겐 너무 컸다. 70인 강의실을 셋이 썼다!--두 학생은 흔쾌히 동의했고 우리는 학교 앞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업과 관련된 몇 마디의 이야기 뒤에 주제는 자연스럽게 4학년인 두 학생의 상황과 진로 등에 대한 화제로 옮겨 갔다. 두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들과 같은 시간을 살았던 나의 모습을 보았다.

 

공군기술사관학교 1년 선후배 사이인 둘은 공군 하사관으로 복무를 하며 학업을 하고 있었다. 고교 선후배 사이였지만 학년은 같았던 둘 가운데 후배는 관제사, 선배는 전투기정비사였다. 공군기술사관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졸업후 의무 복무기간인 7년을 복무한 다음에는 계속 군에 남거나 혹은 전역하거나 선택할 수 있었다. 직업군인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이미 보장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직업군인이 비록 안정된 것이긴 했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던 둘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후배는 공항 관제사가, 선배는 민간 항공사로 옮겨 항공기 정비사를 하면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했다.

 

둘은 꿈을 꾸고만 있지는 않았다. 둘 가운데 선배는 미국 항공기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학기 중에 그 시험을 치기 위해 미국에 다녀온다고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본 시험에 합격을 했다는 것이다. 민간 항공사의 관제사가 되려는 후배는 이미 국제관제사 자격증과 자가용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해 놓았다고 했다.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병역특례로 POSCO를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기 까지의 과정이 그대로 그들에게 오버랩 되는 것 같았다. 시간도 공간도 달랐지만 서로가 느끼고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과 길은 같았기에 비슷한 과정, 비슷한 느낌을 경험하면서 비슷한 길을 가려는 후배들을 보는 느낌은 남달랐다. 뒤에 남은 수업--1학년 학생들이 암기한 표현들을 확인하는 기말시험 대체 과제 확인 시간이어서 이런 자리가 가능했다-- 때문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들과 같았던 내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예전에 내가 느꼈던, 그리고 지금은 그들의 느끼는 이야기와 꿈을 나누면서 즐거웠다. 자신과 타인을 위해 진지하게 사고하고 실천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언제나 기쁘고 즐겁다. 나는 그 두 학생이 이미 자신의 꿈의 첫 단계를 이루었듯이 앞으로 그들이 꾸게 될 더 큰 꿈들도 이루어 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계획되었던 대로 세 시간 수업을 했다면 나는 이들을 이렇게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이름과 인상으로, 수업에 함께 했던 많은 학생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어렴풋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삶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고, 내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들에게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을 보았다. 그들 또한 그들과 같은 고민을 안고 지내왔던 내 삶의 한 부분과 시간을 공유했다. 세 시간 수업과 맞바꿀 충분한 가치 이상이었다.

 

그 시간이 둘에게는 이번 학기의 마지막 시간이자 4학년의 마지막 시간이었고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다. 둘은 그 시간이 기억에 남을 것이라 했다. 둘에게만 그렇겠는가. 수업때문에 둘을 남겨 두고 다시 학교로 올라가야만 했던 아쉬움은 서울에서 이어가기로 했다. 그들의 마지막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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