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안개 자욱한 날

그림자세상 2010. 11. 6. 21:31

안개 자욱한 날

 

 

        여 국 현

 

 

안개 자욱한 날

새들은 길을 잃고

내 마음은 빛을 잃었다

캄캄한 마음속 종 홀로 뎅그렁 뎅그렁 울린다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도

온 마음의 소리가 다 흩어져 속 휑하도록

커다란 종이 뎅그렁 뎅그렁 울린다

 

그 종소리 한때

짙은 안개를 뚫고

높을 산을 넘고

깊고 먼 바다를 건너 

머나먼 숲속에 쉬는 새들을 깨우고

깊은 바닷속 잠든 해초들을 춤추게 하고

푸른 대기를 가득 채운 정령들을 미소짓게도 했지만

이젠 밖으로 퍼지지 못하는 속울음 되어

종의 마음벽 검붉게 멍이 들었다

 

울려퍼지나 어긋나고

속으로만 메아리치는 소리

소리 가득할 때

마음 밖 안개도 마음 속 안개도

더욱 더 짙어져 가고

마음 밖 바람도 마음 속 바람도

더욱 더 거세게 분다

 

새들마저 길 잃은

짙은 안개 자욱한 날

어디에도 들리지 않는 마음의 종은

끊임없이 울리고

종소리 가득한 마음의 안과밖에

가라앉지 못하고 떠돌던 메아리

자욱한 안개 속에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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