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겨울날의 손톱깎기

그림자세상 2010. 9. 21. 15:33

겨울날의 손톱깎기

 

여국현

 

 

한해의 첫날 눈이 내리고

나는 손톱을 깎고 있었다

겨울의 가장 빛나는 한 부분을 잘라내어

어지러이 날려 보내는 하늘을 보며

살아있는 동안은 변함없이 뻗어나올

손톱을 툭툭 분질렀다

눈은 창밖에 떨어져

끊임없이 녹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툭툭 분지른 손톱들을

눈 내리는 하늘 한 복판으로 날려 보냈다

내가 날려 보낸 손톱들은 어딘가에서

튼튼하게 뿌리솟거나 혹은

잊혀지리라

나는 기억하지 못하리라

눈이 녹아 사라짐을 알지 못하듯

언젠가 나이들어 무료한 겨울날

무심히 손톱을 깎다가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며 그리워하리라

빛나던 내 젊은 날의 하늘 한 복판으로

툭툭 분질러날려 보냈던 손톱들을

 

한해의 첫날 눈은 내려 쌓이지 않고

나는 손톱을 깎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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