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P시를 추억하며

그림자세상 2010. 9. 21. 15:35

P시를 추억하며

 

여  국  현

 

 

다시 바람 드센 바닷가 지방도시의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따끔

까닭없이 유쾌한 표정을 한 남자들이

큰소리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잘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한 둘 낯익은 얼굴들도 지나갔다

흔한 일이었다

이층 건물의 다방에는

여상을 졸업한 개인사무실의 여급들이

토요일의 산행과

배 나온 사장의 음흉한 웃음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수필집을

커피에 섞어 마시며

시들어 가고 있었다

몇몇 사내들은

몰락한 한 철인의 우울에 관해

건성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구석 탁자에서는

목소리 큰 남자와 키 작은 여자가

이별 중이었다

모든 옷가게는 세일을 하고

술집과 노래방은 성업 중이었다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여관과 교회는

도시의 밤하늘을 관능적으로 밝히고

한번씩 오고가는 새마을 열차가 다니는 역은

어둡고

추웠다

 

작업복을 입은 이 도시의 남자들 몇은

야근 출근버스 속에서 졸고

여전히 몇개의 가로등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올 겨울에도 이 도시에

눈은 내리지 않았다

여름에 떠난 친구에게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또 한 친구는 오늘도 야근이었다

한 때의 입맞춤은

이미 흩어진 지 오래지만

우체국 계단에는 여전히

또 다른 기다림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났지만

누구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오직 이 지방도시의 바닷바람만이

여전히 건재했다

바다는 아직 밀물 때가 아니었다

그 뿐이었다, 그리고

 

실종된 발자국들을 찾으며

다소 어둡고 긴 거리를 걸어 바다에 이른

한 사내가

바다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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