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그림자세상 2010. 9. 21. 15:32

 

여국현

 

 

마을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뒷산 뽕밭에선 부엉이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별이란 별은 다 모여 두런거리는 하늘에선

이따끔씩 별똥별이 재 너머로 떨어지고

공동목욕탕 뒷논에선

개구리가 밤을 새워 울었다.

어둠이 오지게 깊어

노석이네 삽살개가 겁먹은 소리로

한웅큼의 어둠을 풀어헤치면

아버지와 고사리 따로 꼭 한번 올라봤던

무등산에선 여우울음 소리가

전설처럼 들려오고

개울이 굽이돌아 끝이 보이지 않는 마을 입구

신작로에 서 있는 세 그루 미루나무 위에는

왼종일 마을을 떠돌던 지친 바람이

선잠을 자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둠보다 깊이 잠이 들고

앞산 물탱크 위에 빨간 전등 하나

깜빡거리며 마을을 지켰다

어쩌다 오줌이라도 마려운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서면

온 어둠이 쏟아져 내려 아이가 그만

소리도 없이 울어버리는 그런 밤

사람들은 꿈에 보았다

새로 선 시멘트 공장 시멘트 가루에 덮혀버린

웃마을 민씨네 논 밭 두고

대처로 밀려나던 뒷모습

긴 그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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