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선 열차에서
여 국 현
이맘때였지요
생선 비린내 가득한 경전선 완행열차
차창에 연신 그대 얼굴 그리며
여섯 시간을 달려 닿은
남도의 끝
갯비린내가 어둠보다 더 넓게 덮힌 마을
논을 가로질러 낡은 약국 간판이 비스듬이 걸린
지붕 낮은 집에는
방안 가득 김이 널려있고
맞은 편 야트막한 동산엔 작은 교회가
보일듯 말듯 그림처럼 서 있었지요
처음봐도 낯설지 않은 방에서
깊은 잠을 깬 아침
밤새 내린 눈이 발목께까지 쌓인 논두렁을
사르륵 소리가 나도록 밟으며
안마당으로 들어서듯
그대는 내게 들어오셨지요
내 가슴에는 눈꽃이 피고
그대는 말없이 웃고만 있었지요
얼마만인지요
여전히 생선 비린내 가득한 경전선 완행열차
남도의 사투리는 넘쳐나는데
나는 그대의 역을 지나쳐 갑니다
철교를 지나며 그대와 함께 걸었던 소나무 숲과
두 도가 나뉘는 얼음 언 강을 보고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내 추억 속의 그대가 아름답듯
어느 차가운 겨울날
진눈깨비 날리는 새벽의 바닷가에서
우리들의 무수한 시간들을 태워
바닷바람에 날리며
그대의 가장 처음 모습만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재와
바다 한 가운데
철재 다이빙대에 앉아 있던
무심한 갈매기들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기차는 터널 속을 들어섭니다
곧 낯선 역에 도착하겠지요 그리고
우표도 붙이지 않은 이 편지가
낯선 역의 어느 우체통 속에서 실종되듯
나 또한 그대에게서
잊혀지겠지요
그렇겠지요
어느새 차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겨울 들판이 넓게 펼쳐진 마을들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한 시절이 지나갑니다
그대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