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경전선 열차에서

그림자세상 2010. 9. 21. 15:06

경전선 열차에서

 

 

          여 국 현

 

 

이맘때였지요

생선 비린내 가득한 경전선 완행열차

차창에 연신 그대 얼굴 그리며

여섯 시간을 달려 닿은

남도의 끝

 

갯비린내가 어둠보다 더 넓게 덮힌 마을

논을 가로질러 낡은 약국 간판이 비스듬이 걸린

지붕 낮은 집에는

방안 가득 김이 널려있고

맞은 편 야트막한 동산엔 작은 교회가

보일듯 말듯 그림처럼 서 있었지요

 

처음봐도 낯설지 않은 방에서

깊은 잠을 깬 아침

밤새 내린 눈이 발목께까지 쌓인 논두렁을

사르륵 소리가 나도록 밟으며

안마당으로 들어서듯

그대는 내게 들어오셨지요

내 가슴에는 눈꽃이 피고

그대는 말없이 웃고만 있었지요

 

얼마만인지요

여전히 생선 비린내 가득한 경전선 완행열차

남도의 사투리는 넘쳐나는데

나는 그대의 역을 지나쳐 갑니다

철교를 지나며 그대와 함께 걸었던 소나무 숲과

두 도가 나뉘는 얼음 언 강을 보고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내 추억 속의 그대가 아름답듯

어느 차가운 겨울날

진눈깨비 날리는 새벽의 바닷가에서

우리들의 무수한 시간들을 태워

바닷바람에 날리며

그대의 가장 처음 모습만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재와

바다 한 가운데

철재 다이빙대에 앉아 있던

무심한 갈매기들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기차는 터널 속을 들어섭니다

곧 낯선 역에 도착하겠지요 그리고

우표도 붙이지 않은 이 편지가

낯선 역의 어느 우체통 속에서 실종되듯

나 또한 그대에게서

잊혀지겠지요

그렇겠지요

 

어느새 차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겨울 들판이 넓게 펼쳐진 마을들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한 시절이 지나갑니다

 

그대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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