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works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3)

그림자세상 2010. 8. 16. 00:45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아내는 약속 장소에 마중 나갔다. 기다리는 것 외에 별 도리가 없었으므로--당연히 그 삶이 원망스러웠다--나는 술 한 잔을 들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그때 자동차가 진입로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술잔을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봤다.

 

주차하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아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내는 차에서 내려 문을 닫았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이미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 맹인을 위해 반대쪽으로 갔다. 그 맹인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턱수염이 덥수룩했다. 턱수염을 기른 맹인이라니! 말하자면, 좀 심했다. 맹인은 뒷자리로 손을 뻗더니 여행가방을 끌어냈다. 아내는 그의 팔짱을 낀 채 차문을 닫았다. 진입로를 지나 앞포치로 올라가는 계단참까지 아내는 줄곧 그에게 붙어서 움직였다. 나는 텔레비젼을 껐다. 나는 남은 술을 다 마시고 잔을 헹군 뒤, 손을 닦았다. 그리고 문으로 갔다.

"로버트를 소개해줄게. 로버트, 이쪽은 남편이예요. 전에 다 말했죠." 아내가 말했다. 그녀는 상기돼 있었다. 그녀는 맹인의 외투 소매를 잡고 있었다.

 

맹인은 여행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는 내 손을 잡고 꽉 쥐더니 손을 풀었다.

"예전부터 알던 사람 같구먼." 그가 쩌렁쩌렁하게 말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말했다. 다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서오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그의 팔을 잡고 이끄는 가운데,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포치에서 거실로 들어갔다. 맹인은 다른 손으로 여행 가방을 들고 갔다. 아내는 이런 얘기들을 했다. "자, 왼쪽으로, 로보트. 맞아요. 이제 보시면 의자가 있어요. 예, 그거예요. 거기 앉으세요. 이건 소파예요. 두 주 전에 산 새 소파랍니다."

 

나는 옛날 소파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나는 그 옛날 소파를 좋아했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뭔가 다른 이야기, 허드슨 강의 풍광을 바라보며 기차를 타는 일 따위의 화젯거리를 꺼내려고 했다. 뉴욕으로 갈 때는 기차 오른쪽에 앉아야 하고, 뉴욕에서 돌아올 때는 기차 왼쪽에 앉아야만 한다는 그런 이야기들.

"기차 여행은 어떻게, 좋았습니까?" 내가 말했다. "그런데 어느 쪽에 앉으셨나요?"

"뭐가 궁금한거야, 어느 쪽이라니!" 아내가 말했다. "어느 쪽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냥 물어본 거야." 내가 말했다.

"오른쪽이었소." 맹인이 말했다. "실로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타본 기차였지 . 어렸을 때 타본 게 다야. 가족들이랑. 참 오래전의 일이라오. 그 놀라움을 잊고 산 지 꽤 오래됐어. 이제 내 수염에도 겨울이 찾아왔지." 그가 말했다. "하여튼 그렇게들 말하더군. 보기 좋은 모양이야. 어때?" 맹인이 아내에게 말했다.

"보기 좋아요, 로버트." 그녀가 말했다. "로버트," 그녀가 말했다. "로버트,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마침내 아내는 맹인에게서 눈길을 떼고 나를 바라봤다.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걸 바라보는 눈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맹인이라고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없고,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었다. 그 맹인은 건장한 체격에 머리는 벗어지고 등에 짐이라도 짊어진 것처럼 어깨가 구부정했다. 그는 갈색 슬랙스에 갈색 신발, 밝은 갈색 셔츠, 넥타이, 스포츠 재킷을 입고 있었다. 말쑥했다. 또한 예의 그 턱수염이 덥수룩했다. 하지만 그는 지팡이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검은 안경을 쓰지도 않았다. 나는 항상 맹인들에게는 검은 안경이 필수품이라고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사람도 그런 안경을 쓰기를 바랐다. 처음 봤을 때, 그의 눈동자는 다른 사람들의 눈동자와 비슷했다. 하지만 가까이 살피면 뭔가 다른 게 보였다. 일테면 홍채에 하얀 부분이 너무 많았고, 눈 속의 눈동자가 목적도 없이 또한 멈출 능력이 없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느릿느릿. 그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니 왼쪽 눈동자는 코 쪽으로 움직이는데 다른 쪽 눈동자는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돌아다녔다.

"술이라도 한잔 드셔야죠. 좋아하는 게 뭔가요? 양은 많지 않아도 온갖 종류가 다 있어요. 우리 취미생활이라서요." 내가 말했다.

"젊은 양반, 나는 스카치파라네." 그가 큰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젊은 양반이라고! "그렇군요.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구요."

그는 소파 옆에 있는 여행가방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건 그럴 법도 했다.

"제가 방에다 갖다놓을게요." 아내가 말했다.

"아니, 괜찮아." 맹인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올라갈 때 가져갈 거야."

"스카치에는 물을 좀 넣어야지요?" 내가 말했다.

"아주 조금만." 그가 말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내가 말했다.

"그저 시늉만. 배리 피츠제럴드라는 아일랜드 배우 아나? 그 사람하고 내가 비슷하지.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 물을 마실 때 나는 물을 마신다. 위스키를 마실 때 나는 위스키를 마신다." 그는 말했다. 아내는 웃음을 터뜨렸다. 맹인은 턱수염 쪽으로 손을 움직였다. 그는 천친히 턱수염을 들어올렸다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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