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works

제임스 설터 - 어젯밤(2)

그림자세상 2010. 8. 12. 17:58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거실에 둘러앉았다. 큰 파티에서 돌아와 아직 자러 갈 기분은 아닐 때와 비슷했다. 월터는 앞으로 할 일을 생각했다. 냉장고 문을 열면 불이 켜질 것이다. 주삿바늘은 날카로웠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바늘 끝은 면도날처럼 각이 지게 잘렸다. 그 바늘을 마리트의 혈관 속에 찔러야 할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점점 더 긴장이 되었다.

--엄마 생각이 나요. 마리트가 말했다. 마지막에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고 싶어 했어요. 레이 마인은 테디 허드너와 잤다. 앤 헤링도 잤다. 그 여자들은 결혼한 사람들이었죠. 데디 헤드너는 아니었어요. 광고 쪽에서 일했는데 언제나 골프를 쳤어요. 엄마는 계속 그런 얘기를 늘어놨어요. 누가 누구와 잤다는. 그게 마지막에 내게 하고 싶어하던 말이에요. 물론 그때 레이 마힌이 대단하긴 했죠.

 

그러고 마리트가 말했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가야겠어요.

그녀가 일어섰다.

--괜찮아요.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아직은 올라오지 말아요. 잘 자요. 수잔나.

둘만 남게 되자 수잔나가 말했다.

--저 갈게요.

--아니, 안 돼. 제발 가지 마. 여기 있어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난 못해요. 그녀가 말했다.

--제발, 그렇게 해야 해. 2층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그때 혼자 있을 수가 없어. 부탁이야.

그녀는 말이 없었다.

--수잔나.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미리 다 생각해놓았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물론이야.

 

몇 분이 흐른 후 월터는 손목시계를 봤다.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잠시 후 다시 시계를 보더니 거실에서 나갔다.

 

L자 형 부엌은 구식이었고,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다.  개수대는 흰색 애나멜이었고 나무 찬장은 칠이 여러 겹 칠해졌다. 여름이면 이 부엌에서 잼을 만들었다. 뉴욕행 기차가 서는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딸기를 상자에 담아 팔았다. 향수처럼 향기로운 그 딸기는 잊을 수 없다. 아직도 잼이 몇 병 남아 있었다. 그는 냉장고로 가서 문을 열었다.

 

옆에 짧은 빗금이 쳐진 주사가 있었다. 10cc가 들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주사기를 떨어뜨려 그게 부러지거나 한다면, 손이 떨려서 그랬다고 한다면....

그는 접시를 꺼낸 다음 마른 수건으로 덮었다. 그렇게 하니 더 끔찍했다. 접시를 내려놓고 주사기를 집어 여러 가지로 손에 쥐어보았다. 결국 거의 다리 뒤로 감추는 모양새가 되었다. 종잇장처럼 몸의 무게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힘이 없었다.

 

마리트는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눈 화장을 하고 아이보리섹 실크 잠옷을 입었다. 등이 파진 가운이었다. 저승에서 입게 될 옷. 그녀는 사후 세계가 있다는 걸 애써 믿으려 했다. 고대 사람들이 확신했듯 작은 배를 타고 그리로 건너가게 될 것이다. 목에는 은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지치고 우울해 보였다. 와인 기운이 있었지만 차분한 건 아니었다.

 

월터는 들어오라는 허락을 기다리듯 문간에 서 있었다. 마리트가 말없이 그를 쳐다봤다. 그가 손안에 쥐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심장이 내려앉았지만 내색을 하고싶진 않았다.

--여보, 그녀가 말했다.

그는 대꾸를 하려 했다. 새로 립스틱을 발랐는데, 짙은 색이었다. 침대 주변으로 늘어놓은 사진이 보였다.

--들어와요.

--아니, 금방 올게. 그가 겨우 말했다.

 

그는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술이 필요했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수잔나는 가고 없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외로운 건 처음이었다. 부엌에 가서 보드카를 따랐다. 아무 냄새도 없는 투명한 용액을 유리잔에 따라 단숨에 마셨다. 그는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가서 아내 가까이, 침대 위에 앉았다. 보트카의 술기운이 돌았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월터, 그녀가 말했다.

--응?

--이게 맞는 거예요.

아내가 그의 손을 잡았다. 왠지 끔찍했다. 같이 가자고 붙잡는 것처럼.

--있죠.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평이하게 말했다. 난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했어요. 좀 감상적이죠? 알아요.

--아, 마리트! 그가 이렇게 소리쳤다.

--날 사랑했나요?

절망감으로 속이 느글거렸다.

--그럼. 그가 말했다. 그럼!

--건강하셔야 해요.

--응.

그는 실제로 건강했다. 전보다 몸은 좀 불었지만 그럼에도.....학자 같은 둥근 배는 보드랍고 짙은 체모로 덮였고, 손과 손톱은 단정했다.

 

그녀는 모을 기울여 그를 안았다. 그리고 키스했다. 순간적으로 두렵지 않았다. 다시 살 것이다. 예전처럼 젊어진 채로. 그러고는 팔을 내밀었다. 팔 안쪽으로 녹청색 혈관이 두 줄 보였다. 그가 혈관을 도드라지게 하려고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기억나요?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베이트에서 일하면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요. 난 바로 알았어요.

주사기를 제자리로 가져가려는데 주사기가 흔들렸다.

--난 운이 좋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정말 운이 좋았어요.

그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기다렸지만 아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믿을 수 없어하면서 주사기를 밀어넣었다. 쉽게 들어갔다, 안에 든 용액을 혈관 속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몸을 누이며 눈을 감았고, 얼굴은 평화로웠다. 떠난 것이다. 아, 하느님, 그는 생각했다. 아, 하느님. 20대부터 아내를 알았다. 다리가 길고 순진한 여자였다. 해장하듯 그는 이제 그녀를 시간의 흐름 밑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 따뜻한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이불을 끌어올려 다리를 덮어주었다. 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치명적인 결말 후의 침묵이었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엄청난 안도에 슬픔이 섞여 있었다. 밖에는 거대한 푸른 구름이 밤을 채웠다. 그는 몇 분 동안 서 있었는데 그러다가 자기 차 안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수잔나를 보았다. 다가가자 수잔나가 차창을 내렸다.

--안 갔구나. 그가 말했다.

--집 안에 있을 순 없었어요.

--끝났어. 그가 말했다. 들어와. 한잔해야겠어.

그녀는 그와 함께 부엌에 서있었다. 양손으로 팔꿈치를 쥐어 팔짱을 끼고.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 그가 말했다. 그냥....나도 잘 모르겠어.

거기 그렇게 선 채로 술을 마셨다.

--부인이 정말 내가 오길 원하셨던가요? 수잔나가 말했다.

--자기야, 그녀가 원했다고. 정말 아무것도 몰라.

--글쎄요.

--믿으라고. 정말 몰라.

그녀는 술잔을 내려놨다.

--그러지 말고 마셔. 그가 말했다. 도움이 될 거야.

--기분이 이상해요.

--이상해? 어디 속이 불편해?

--잘 모르겠어요.

--아프지 마. 이리 와. 잠깐 내가 물을 가져다줄게.

그녀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좀 눕는 게 좋겠는데. 그가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이리 와.

그는 블라우스와 미니스커트 차림의 그녀를 현관 옆에 있는 방으로 데려 갔다. 그러고는 침대 위에 앉으라고 했다. 그녀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수잔나

--네.

--당신이 필요해.

그의 말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신을 구하는 여자처럼 머리를 뒤로 젖혔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가 입은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었다.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단추를 다시 채우려고 했다.

 

그는 브래지어를 풀었다. 풍만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월터는 젖가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그 위에 키스했다. 그가 침대의 흰 시트를 젖히자 수잔나의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그녀는 다시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의 손이 입을 막았고 그녀의 몸을 눌렀다. 그는 삼켜버리듯 순식간에 탐믹하더니 마지막엔 공포에 떠는 사람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곤 그녀를 조이듯 껴안았다. 그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른 새벽, 햇빛은 투명하고 눈부셨다. 동향의 그 집은 더 하얗게 빛났다. 동네의 어느 집보다 깨끗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집 옆 커다란 느릅나무는 연필로 그린 듯 정교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엷은 색 커튼은 정지한 듯 움직임이 없었다. 집 안의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집 뒤엔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정원을 보러 오던 날, 키가 크고 날씬한 수잔나가 그 정원 위를 가로질러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녀를 처음 본 날이었다. 그날의 모습을 지울 수 없었지만 관계가 시작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마리트와 정원을 다시 꾸미려고 그녀가 집에 왔을 때.

 

월터와 수잔나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공범인 그들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제대로 눈을 맞추기 전이었다. 하지만 월터는 황홀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화장기 없는 그녀는 더 예뻤다. 긴 머리를 빗기 전이었다.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 몇 군데 전화를 해야 했지만 그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직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 대신 오늘 이후의 일들을 생각했다. 앞으로 맞이할 아침들. 처음엔 뒤에서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발소리가 났고 이어서 천천히 또 한 번 발소리가 들렸다. 수잔나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마리트가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얼굴에 한 화장이 굳었고, 립스틱엔 균욜이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뭔가 잘못됐어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 괜찮아? 그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다. 

--나요. 당신이 뭔가 잘못했나 봐요.

--맙소사. 월터가 우물거렸다. 

그녀가 마지막 계단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수잔나의 존재는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당신이 와서 어떻게 해줄 줄 알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모두 잘못되었어요. 마리트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러더니 수잔나를 향해, 아직 여기 있어요?

--지금 가려고 했어요. 수잔나가 말했다. 

--이해할 수가 없어. 월터가 다시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돼요. 마리트가 흐느꼈다. 

--미안해. 그가 말했다. 정말 미안해.

 

그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수잔나는 방으로 가서 옷을 챙긴 후 현관으로 나갔다. 그게 수잔나와 월터의 마지막이었다. 그의 아내에게 들킨 그 순간으로. 그가 우겨서 그 후에도 두세 번 만나긴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게 무엇이었든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건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냥 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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