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works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2)

그림자세상 2010. 8. 15. 23:27

하지만 죽는 대신 그녀는 심하게 아팠다. 그녀는 모두 게워냈다. 장교는--이름 따위야 알 게 뭐겠는가? 어린 시절붙 연인이었는데 이제 뭘 더 바라겠는가?--집으로 돌아왔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시간이 흐르 뒤, 그녀는 그 일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그 맹인에게 보냈다. 몇 년에 걸쳐셔 그녀는 온갖 종류의 일들을 테이프에 담아 보내는 일에 열중했다. 매년 한 편의 시를 쓰는 일을 제외하면, 그 일이 그녀의 가장 중요한 여가선용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중 한 테이프에다 그녀는 잠시 장교와 별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맹인에게 말했다. 다른 테이프에서는 이혼에 관해 말했다. 그녀와 나는 만나기 시작했고, 당연히 그녀는 그 일을 맹인에게 말했다. 그녀는 모든 일을 그에게 말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한번은 맹인이 막 보내온 테이프를 한번 들어오보겠느냐고 내게 물은 적도 있었다. 일 년 전 쯤의 일이었다. 내 얘기도 나온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좋다고, 들어보겠다고 했다. 우리는 술잔을 들고 거실에 앉았다. 우리는 들을 준비를 갖췄다. 먼저 그녀가 카세트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두 개의 다이얼을 조정했다. 그다음에 버튼을 눌렀다. 끽끽거리며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누군가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리를 줄였다. 몇 분간의 악의 없는 잡담이 이어지다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맹인, 그 낯선 사람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이런 말이 들렸다. "그 사람에 관해 자네가 말한 바를 들어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 하지만 그 순간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테이프를 꺼야 했고, 그다음에 다시 듣지도 않았다. 아마 안 듣는 게 좋았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었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 맹인이 우리 집에 잠을 자러 온다는 것이었다.

"같이 볼링이나 치러 가면 되겠네."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싱크대 앞에 서서 스캘럽 포테이토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날 사랑한다면," 그녀가 말했다. "내 생각을 해서 좀 참아줘. 사랑하지 않는다면, 좋아. 하지만 당신한테도 친구가 있을 거 아니야. 한 명이라도. 그 친구가 찾아온다면 내가 잘 대접하는 게 좋지 않겠어?" 그녀는 그릇 닦는 수건에 두 손을 닦았다.

"맹인 친구는 없어." 나는 말했다.

"다른 친구도 없잖아."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말해야지. 게다가"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은 이제 막 상처했다구!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그 사람 아내가 죽었다구!"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맹인의 아내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녀의 이름은 뷰라였다. 뷰라! 유색인종의 이름이다.

"아내가 니그로 아니야?" 내가 물었다.

"미쳤어?" 아내가 말했다. "지금 돌아버린 거야, 뭐야?" 그녀는 감자 하나를 집었다. 나는 그 감자가 바닥에 떨어져 레인지 아래도 굴러가는 것을 봤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술 마셨어?"

"그냥 물어본 것뿐이야." 나는 말했다.

 

아내는 곧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세한 일들까지 내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술 한 잔을 가져와 식탁에 앉아서 듣기 시작했다. 몇몇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뷰라는 아내가 일을 그만둔 그해 여름부터 그 맹인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뷰라와 그 맹인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조촐한 결혼식으로--무엇보다 그런 결혼식에 가고자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그 두 사람과 목사와 목사의 아내가 참석했다. 하지만 교회 결혼식은 교회 결혼식이었다. 뷰라가 원한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뷰라의 임파선에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팔 년 동안 찰떡같이 붙어 다닌 뒤--찰떡같이란 아내의 표현이다--뷰라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 맹인이 병상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동안, 시애틀의 한 병원에서 그녀는 숨졌다. 그들은 결혼했고, 함께 일하며 살아갔고, 함께 잠잤는데--물론 섹스로 했는데--이제 그 맹인이 그녀를 묻어야만 했다. 그 불쌍한 여자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했다. 여기까지 듣게 되자, 그맹인에 대해서 미안한 생각이 조금 들긴 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살아온 삶의 행로가 얼마나 가엾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번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여인을 상상해보라.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소한 칭찬도 들어보지 못한 여자. 그게 참담한 표정인지 혹은 더 나은 표정인지, 아내의 안색을 전혀 읽을 수 없는 남편을 둔 여자. 화장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게 그 사람에게 중요할 리가 없다. 원한다면 한쪽 눈 주위에 초록색 아이새도를 하고 콧구명에는 핀을 꽂은 채 노란색 슬랙스에 자줏빛 신발을 신고 다닐 수 있겠으나 그래봐야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다가 죽음 속으로 빠져들던 그 순간, 맹인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그 눈먼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테니--지금 상상해보면 그렇다--그녀의 마지막 생각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이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자신은 무덤으로 직행하고 있다. 로버트에게 남은 건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의 보험증서와 이십 페소짜리 멕시코 동전 반쪽이었다. 나머지 반쪽은 그녀의 관 속으로 들어갔다. 애처롭도다.

'Texts and Writings > wor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4)  (0) 2010.08.16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3)  (0) 2010.08.16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1)  (0) 2010.08.15
제임스 설터 - 어젯밤(2)  (0) 2010.08.12
제임스 설터 - [어젯밤](1)  (0) 201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