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옷깃에 스친 인연

그림자세상 2010. 8. 5. 21:14

나는 '이병주'라는 고봉준령을 오를 수 없다. 까마득해서 주눅이 든다. [소설 알렉산드리라]에 가기도, [관부연락선]을 타기도, [지리산]과 [산하]를 밟기도 힘이 부치고 [쥘부채]를 잡거나, [행복어 사전]을 뒤지거나, [그해 오월]을 기억하기도 깜냥이 안 된다. 포기가 마땅하거늘 용심을 부리는 것은 가녀리나마 선생과 얽힌 추억이 있어서다. 선생이 내 손에 쥐어준 몇 낱 안 되는 말과 글의 이삭을 만지작거리자니 옷깃만 스친 그 인연조차 새삼 느껍다.

 

1970년대 중반, 스물을 갓 넘긴 나에게 선생은 문호로 다가왔다. 초기작 몇 편을 읽었을 뿐인데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것을 '솸광에 눈먼 자의 과장된 경념'이라고 나무라지 말라. 문학을 사랑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제 이병주를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으로 나누자라는 말까지 나온 것에 비하면 내 존경은 사사롭다. 인간과 역사, 전쟁과 이념, 정치와 애정이 정횡하는 작품 속에서 나는 막막한 미아였다. 선생의 문학적 편력이 겹쳐진 [허망과 진실]을 접한 나는 덧없는 인생과 배운 자의 허무에 몸서리쳤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 정약용과 사마천 등의 내면을 탐사한 이 에세이는 선생의 삶과 사상이 빚은 결곡한 마음의 지형을 엿보게 한다. 선생은 서문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은 '인생이란 결국 허망한 것'이라는 교훈을 가르쳐준다면 이는 니체도 루쉰도 마르크스도 같다고 지적한다. "허망을 배운 사람은 이미 지옥을 보아버린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 허망를 뚫고 찾아낸 진실만이 지옥을 견디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란 인식이 굳어 있는 것이다." 덧붙여 선생은 '허망하기에 진실이 아름답다는 것은 역설이 아니다'라고 했다.

 

작가 조세희와 이문열이 [허망과 진실]을 읽고서 '도스토예프스키의 평전을 써 볼 생각을 포기했다'는 토로가 풍문처럼 들려올 즈음, 나는 선생이 언급한 라스콜리니코프의 히포콘드리아(우울증)가 내 평생의 숙환이 될 거라는 예감에 젖었다. 선생의 저서는 전염성이 강했고 음명이 짙었다. 허망이 울증과 짝하며 나를 괴롭힐 때, 처방전을 쥐어준 분도 선생이다. 선생이 입버릇처럼 되뇐 '봉 상스bon sens 있는 딜레탕트,' 나는 그것을 '인생과 예술을 완미하는 양식인'으로 풀었다. 장강 같은 사유와 도저한 현학, 끝 간 데 모를 박람강기로 내 덜미를 움켜잡은 선생의 행간에서 지금껏 꿈틀대는 구절은 '봉 상스 있는 딜레탕트' 하나다.

 

반독재 추쟁과 민주화 운동이 안간힘을 쓰던 70년대의 겨울공화국에서 '완미'라니, 이 무슨 한가로운 사치인가. 날선 필봉을 휘두르던 한 언론인을 선생의 책을 끼고 살던 나를 그렇게 나무랐다. 그는 선생의 '회색'을 꼬집었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어느 진영에 서서도 독자를 설득해 내는 기막힌 변설 그리고 모든 추구를 도로에 그치게 하는 역사적 허무주의와 댄디한 망명의식은 현실의 고통과 모순을 희석하고 변혁에 동참하는 행위를 망설이게 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나는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무슨 쓸모인가"라고 말한 선생의 편에 서고 싶었고, 허망이 뼈에 저릴 때 그 좌절조차 완미하려는 한 인간의 내성에 홀려 있었다. 그렇게 내 청춘은 흘러갔다.

 

1976년 지역의 문학 강연회에 초대한 인연으로 나는 용상 청과물시장 한 귀퉁이 건물에 거처하던 선생을 자주 찾았다. 잔심부름을 시키는 선생이 외려 고마웠다. 조도 낮은 집필실에서 삼 미터나 됨직한 책상에 수천 장의 원고지를 쌓아두고 몽블랑 만년필을 혹사하던 선생이, 마냥 기다리는 나를 보고 "자내도 한번 피워보게"하며 건넨 것이 소련제 담배였다. 러시아 어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던 시절, 이를 도대체 어디서 구했을까. 선생의 도처가 경이였다. 일제의 학병으로 끌려가 쑤저우에서 군마와 지내다 걸린 동상 때문에 손가락을 자른 고통을 들으며 '8월의 사상'을 곱씹기도 했다. 레드 와인을 마신 후 멋들어진 붉은 콧수염을 쓰윽 문지르던 그 정경도 아슴아슴하다.

 

선생은 [관부연락선]에서 운명적 정인으로 묘사한 서경애를 수소문해 보라며 한때 교직에 있었던 그녀의 본명을 귀뜀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덮었다. 언론인 남재희는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를 허무는 선생의 행보'를 반추했지만, 나는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을 드러내는 청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편애와 독단은 선생을 진혼하지 못할지언정, 미망과 착종 속에서 방황하는 젊음들아, 그대들은 이병주를 읽어라. 내 추억은 이제 달빛에 물든 신화가 되고 있지만 그대들은 햇빛에 바랜 역사를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