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방 안에 꽃 들여 놓으시지요

그림자세상 2010. 8. 4. 00:14

일본의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한국에 애독자가 많다. 메이지유신의 영웅을 그린 [료마가 간다]로 일본의 '국민작가'가 된 그는 조선 도공의 삶을 소재로 한 [고향을 어찌 잊으리까]로 우리에게 낯익다. 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그의 한국 기행문 두 권을 낸 적도 있다. 책이란 신통해서 글이 마음에 들면 저자가 남 같지 않다. 본 적도 없는 그가 아는 이 같다. '시바 료타로'는 필명이다. '중국의 사마천을 따라잡기에는 요원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 역사소설가다운 겸손도 마음에 든다.

 

일본에서 건너온 시바 료타로의 붓글씨 하나를 얻었다. 테두리를 대나무로 장식한 표구가 빼다 박은 일본 솜씨다. 시바의 육필은 호협한 그의 문장과 달리 단정했다. 거들먹거리는 대가의 유품이 아니라서 살가운 느낌이 들었다. 히라가나와 한자를 섞어 쓴 글씨는 또한 뜻이 묘했다. 우리말로 풀면 이렇다.

 

"돌아보면 다시 피어 있다. 꽃 삼천 부처 삼천."

 

음절로 보니 하이쿠는 아니다. 글맛은 이슬 마신 듯하다. 싱겁지만 투명하다. 시바가 돌아본 과거는 온통 꽃길이었던가. 삼천 그루의 꽃이 어룽져 삼천불이라니, 그의 상념에 꽃멀미가 난다. 아득하니 아름다운가, 아름다우니 아득한가.

 

궁금증을 못 견디고 수소문해 보았다. 생전에 시바가 한 건축주의 주문을 받고 비석에 이 문구를 써주었는데, 그 비석은 현재 동오사카에 있는 시바 료타로 기념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내가 입수한 육필은 그 비문 글씨체와 다르다. 그는 이 문구를 여러 차례 썼던 모양이다. 무슨 마음을 먹고 이 글을 썼을까. 기념관에 문의하니, 돌아온 답이 기막혔다. '꽃을 바치는 글'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이름 붙이기를 '화공양문'이라고 했단다. 가까운 이들에게 이런 사연을 들려주었더니, 다들 탄성을 질렀다. 몽골에서 시바 료타로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언론인은 그 인연을 들먹이며 "이 글 임자는 난데"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시바 료타로의 공양문을 가슴에 묻어둔 어느 날, 나는 밀양에 있는 혜산서원에 내려갔다. 혜산서원은 내 문중의 선조 다섯 분을 받드는 곳이다. 깊은 가을 햇빛은 인색했고 서원의 팔작지붕은 궁색했다. 오래된 것들의 남루함은 그러나 떳떳한 결핍이다. 시절을 지켜낸 옛집은 가난이 자존과 썩 잘 어울린다. 열 채가 넘는 당우들이 시름겨운 어깨를 맞대고, 가을 가뭄에 애타는 잡초는 부황기가 완연하다. 느긋한 걸음으로 뜰에서 서성거리는데, 오래된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얖은 물에 부레옥잠이 혼곤히 잠겨 있었다. 연못가에서 넋을 놓고 서 있는 나를 보고 문중 어르신이 다가왔다. 그는 도포 차림에 유건을 갖추었다.

 

어르신이 물었다. "이 연못이 무엇을 닮았는가?" 아닌 게 아니라 꾸밈새가 독특했다. 마치 '8'자를 옆으로 누인 형상이다. 맨 처음 연못을 조성할 때, 나비 모양을 본떴다고 그는 귀뜀했다. 한 바퀴 돌아보니 날개를 활짝 편 나비다. 그러나 연못 어느 곳에 서서 봐도 나비의 날개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르신은 날개를 숨긴 이유를 알려주었다. "나비는 아름다운 꽃을 찾아다니는 미물 아닌가. 옛어른들께서는 아셨던 거지. 아름다운 것은 다 치지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이곳에 남겨둔 것이라고 들었네." 혜산서원에 모신 분으로 앞서 소개한 격재 손조서가 있다. 그는 <꽃나무를 보고 쓰다>란 시를 남겼다.

 

園林花滿爛 숲에 꽃들이 확짝 피니

蛺蝶滿枝來 온 가지에 나비 날아오네

汝蝶莫貪愛 나비야 탐내지 말거라

花非爲爾開 꽃이 너 때문에 핀 게 아니니

 

날개를 숨긴 나비의 뜻이 이 시에도 들어 있다. 아름다움은 탐식할 수가 없다.

 

시바 료타로의 붓글씨는 내게서 떠났다. 지금껏 나는 꽃의 마음을 모른다. 꽃이 부처가 되는 경지를 나는 감당 못한다. 꽃을 그저 풍경으로 여기는 산림처사 한 분에게 시바의 글을 공양했다. "방 안에 꽃 들여 놓으시지요"라며 흰소리를 했더니, 그는 "그냥 꽃다이 늙어갈게"하며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