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essay-to remember the past

쌍용에 관한 몇가지 사소한 기억들(4)

그림자세상 2010. 7. 19. 01:52

  어떤 날은 해 아버지와 먼 산으로 고사리를 따러 갔다. 우리들이 놀던 앞 동산이 아니라 마을을 한참 벗어난 좀 더 높고 깊은 산이었다. 아버지는 이따끔씩 그 산으로 고사리를 캐러 가곤 하셨다. 보통은 혼자 가곤 하셨는데 드물게 함께 가자 하시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망태기 비슷한 것을 준비하고 오래 걸을 채비를 해서 집을 나서곤 했다. 산을 자주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늘 앞 동산에서 놀던 터라 산 자체가 무섭거나 산을 오르는 일이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와 둘이 가는 산 길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는 말씀이 많은 분은 아니셨다. 게다가 나는 아버지를 어려워 하던 터라 둘이 함께 걷는 산길은 늘 조용했다. 이따끔씩 아버지가 무슨 말인가를 하셨지만 꼭히 내게 묻는 말은 아니었고 나도 굳이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조금 험한 산길로 접어들 때면 아버지는 뒤를 돌아 보시며 "조심해라" 그 한 마디 하셨다. 얼마를 갔을까, 문득 생각난 듯 멈춰 선 아버지는 고사리 꺾는 법을 알려주고 행여 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러주며 앞장 서 다시 산길을 걸어가셨다. 나는 아버지가 맨 망태기가 흔들리는 모습과 아버지의 넓은 어깨 위로 솟은 산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뒤를 따라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고사리를 따는 내내 아버지는 별 말이 없었다. 나도 연신 고사리를 꺾어 내 어깨에 맨 망태기에 담았다. 그런 날의 하루 해는 참 길었다. 말 없는 두 부자의 고사리 따기는 그렇게 한 나절이 다 가도록 이어졌다. 몇번이나 되었을까, 아버지와 나의 고사리 따러 가기는. 산 사람도 아닌 아버지는 왜 고사리를 따러 산 길을 나섰던 것일까. 나는 또 굳이 왜 데려갔던 것일까. 나는 묻지 않았고 아버지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한참 고사리를 따다 지칠 때쯤 아버지는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꺼냈고 우리는 말 없이 퍽퍽한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을 먹고 난 다음이면 나는 아이들과 놀 생각에 얼른 사택 놀이터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에게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해가 서쪽 하늘로 뉘엿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망태기를 챙기시며 "그만 가자" 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아침에 왔던 길을 다시 말 없이 걸어 돌아왔다. 해는 우리 앞쪽에서 우리가 걷는 걸음보다 먼저 산을 넘어 갔고, 아버지의 그림자가 내 몸을 다 덮을 정도로 길게 드리워질 때 쯤이면 사택 어귀에 도착하곤 했다. 개울에서 손 발을 씻고 집에 들어가 망태기를 내려 놓을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런 날이 지나면 며칠 동안 우리집 밥상에는 고사리 무침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했던 몇 안 되는 일과 아버지와 함께 했던 몇 안 되는 동행 가운데 산길을 넘어 고사리를 따러 갔던 기억은 또렷하지도 않으면서 잊혀지지도 않는다. 아직도 나는 모른다. 아버지가 왜 고사리를 따러 갔는지. 또 왜 나를 데려 갔는지. 나는 지금도 고사리 무침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