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essay-to remember the past

큰 아버지(1)

그림자세상 2010. 8. 17. 02:08

강원도의 겨울은 추웠다. 큰아버지 집의 겨울 아침은 쨍하게 추웠다.

겨울 아침, 잠에서 깨어 집 안에서 밖을 바로 면하고 있는 문을 여는 순간 냉혹한 겨울 아침 바람은 터진 보의 틈으로 밀려드는 호숫물처럼 국지적이며 총체적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바늘로 한땀한땀 불현듯 찔러대는 것 같은 얼얼한 공기의 입자들이 방을 벗어난 얼굴 곳곳을 쑤시는 통에 금방이라도 내 얼굴의 혈관들이 쩍 하고 갈라질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한다. 숨소리보다 더 빨리 문을 닫아도 이내 방안은 강원도의 싸늘한 겨울 아침 공기에 점령 당한다. 겨울 아침 바람 가득한 방안의 공기는 적과 내통하다 들킨 스파이처럼 차가운 침묵뿐이다. 뺨은 얼얼하고 눈썹까지 뻣뻣하게 굳어버린 것 같다. 큰 아버지 집은 늘 그랬다. 겨울에만 간 것은 아니었음에도 내게 큰아버지 집은 언제나 겨울 아침의 이 느낌으로 또렷하다.

 

큰아버지 집을 가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가을의 추석 성묘나 설 성묘를 위해 할머니 묘소를 다니러가는 길. 한참 잘 찾지 않던 어떤 기간을 제외하면 한해에 이 두 번, 아버지와 나는 큰아버지댁을 찾았다. 물론 찾지 않은 해가 더 많았다. 더러는 할머니의 묘소를 들렀다 나오더라도 큰아버지를 뵙지 못하고 올 경우도 많았다. 방 밖과 홑 창 미닫이 문으로 면해 있던 큰아버지 집 마루와 마당에는 언제나 술병이 가득했다. 빈 술병에 가득했을 하얗고 투명한 액체들은 검붉은 큰아버지의 얼굴에 분주하게 흘러다니는 혈관을 따라 골고루 퍼져있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짙고 깊은 주름 가득한 큰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 그렇게 검붉었다. 그 검붉은 얼굴에 번지는 웃음은 언제나 쓸쓸한 늦가을 어스름결에 맨땅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을 닮았다.  

 

큰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과묵함이 병이라면 큰아버지는 중병이었다. "용이 왔나? 잘 있었나? 가나?"가 전부였다. 더러 "많이 먹고..."라고도 했다. 일년에 한두 번 될까말까 만나는 아버지와 저녁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서도 언제나 말은 아버지의 몫이었고 큰아버지 곁에는 침묵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부부가 닮는다면 큰아버지는 큰아버지의 부인, 그러니까 내 큰어머니와 너무 닮았다. 큰아버지의 부인, 그러니까 내 큰어머니, 내 유일한 사촌 누나와 사촌 동생의 엄마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나는 큰어머니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몇 번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나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안기도 했지만 나는 큰어머니의 말,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큰어머니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나는 두 분의 삶을 기억하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두 분이 함께 했던 삶이 오손도손 도란도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안다.

 

아들 딸 둘을 낳고 큰아버지는 큰어머니는 헤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큰아버지가 큰어머니를 떠났다. 누구의 잘못이라 할까, 두 분의 침묵은 교통할 수 없었고, 두 분의 섞이지 않는 소리는 늘 허공에서 갈렸다. 나뉘지 못한 침묵과 엇갈린 소리가 두 분을 갈라놓았던 것일까. 친정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큰어머니는 울고불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그때도 큰아버지는 침묵했다. 사촌 누나도 동생도 그들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큰어머니를 따라 갔다. 아주 오랫동안 사촌들은 그들의 아버지, 즉 나의 큰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찾지 못한 자식들이나 자식들을 떠난 후 다시 찾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 혹 분노와 회한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것이 아니다. 하여 나는 내 유일한 사촌들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여전히 나는 그들의 삶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들의 삶에 대해 말할 만큼 그들의 시간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 사촌들의 아버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의 큰아버지에 대해서 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도 휙 나타났다 사라지는 단편의 꿈같은 기억의 조각만으로.

 

우리가 쌍용을 떠난 뒤, 세상을 뜬 큰아버지. 당신의 어머니, 즉 나의 할머니 바로 앞에 나란히 묻힌 큰아버지를 나는 어느 순간까지 잊은 적이 없다. 할머니가 그러했듯 큰아버지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한 것도 아니었다. 큰아버지의 침묵은 아릿하게 상처를 드러내긴 했으나 상처를 안기지 않았고, 큰아버지의 과묵함은 일요일 저녁 교회 종소리처럼 묵직하게 가슴 한켠을 눌러 오기는 했으나 주저앉히기보다는 쪼그려 그 앞에 앉고 싶을만큼 눅진했다. 오래된 밭고랑 같았던 큰아버지의 깊고 굵은 주름은 그때 내게 큰아버지만이 풀 수 있는 꼬이고 엮인 세월의 흔적과도 같았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침묵과 고통의 시간이 새겨놓은 인장 같았다.

  

큰아버지의 걸음은 느렸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나 마실 갔다 돌아올 때면 신작로를 걸어오는 큰아버지의 두 팔은 휘휘 늘어진 버들이 보일듯 말듯 바람에 휘날리듯 양팔을 움직이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뒷짐을 지고, 발은 그저 발이 이끄는 대로  갈 일도 올 일도 없다는 듯 신발도 안 신은 듯 길을 따라 흐르듯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 걸음은 곧은 걸음이 아니었다. 신작로를 지나 집으로 이어진 마을길도 비뚤했지만 큰아버지의 걷는 듯 마는 듯 하는 걸음은 더욱 비뚤었다. 어둠 내린 저녁 나절 작업모를 쓰고 고개를 숙인 채 뒷짐을 지고 신작로를 지나 집으로 이어진 마을길을 휘적휘적 걸어오는 큰아버지를 보면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그만 슬픔의 덩어리가 바람에 떠밀려 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