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essay-to remember the past

쌍용에 관한 몇가지 사소한 기억들(3)

그림자세상 2010. 7. 19. 00:47

   산 고개를 넘어 도착한 시멘트 회사의 독신자 숙소는 별천지였다. 당시로는 고층의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독신자 숙소에 도착한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사택 앞 불어난 개울물도, 그 물에 어쩌면 곧 쓸려가 버릴지도 모르는 집도 까맣게 잊은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층 마다 있는 수세식 화장실과 깔끔한 방, 넓다란 휴게실, 초등학교를 포함해 밖이 환하게 보이는 넓다란 창, 밖에 내리는 빗소리도 잘 안 들릴 만큼 조용한 실내, 그리고 무엇보다 그 넓은 휴게실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텔레비젼 수상기! 아이들은 온통 그 텔레비젼 앞에 정신을 빼았겼다. 어른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 마흔 다섯 가구가 살던 우리 사택에 텔레비젼은 고작 2대뿐이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쾌걸 조로 같은 만화영화를 할 시간이 되면 텔레비젼이 있는 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어쩌다 김일 선수의 레슬링 경기나 박스컵 축구대회 같은 경기를 할 때면 텔레비젼이 있는 집에서는 평소 같으면 마루에 놓였던 조그만 화면의 텔레비젼을 선을 연결해 사택 앞 평상으로 옮겨 놓고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빽빽하게 보곤했다. 그나마도 앞자리는 어른들 차지고 아이들은 그저 뒤쪽에서 소리와 번쩍이는 흑백의 빛깔에 만족해야 했을 뿐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구경하기 힘든 텔레비젼이 커다란 휴게실 중간에 떡하니 놓여서 그냥 틀기만 하면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그 텔레비젼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른들도 한편으로는 두고온 집이며 가재도구 걱정을 잊을 수는 없었지만 텔레비젼 화면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모두 사원 가족인 피난온 사람들을 위해 빵과 우유 같은 것을 준비해 나눠주었다. 아이들에게는 이 또한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어느새 집도 불어나는 개울물도 다 잊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꾸지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빵과 우유를 먹으며 텔레비젼 앞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5층이 넘는 독신자 숙소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뛰어다니느라 그 어떤 곳보다도 재미있는 놀이터에 온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갑자기 비는 두려운 대상에서 너무도 반가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중에 비가 그치고 다행히 아무 일이 없이 사택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그 독신자 숙소를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아쉬워 했다. 비가 더 내리길, 그래서 사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독신자 숙소에 계속 머물 수 있기를 아이들은 진심으로 원했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와 아저씨는 까맣게 잊고 나도 아이들 틈에서 텔레비젼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재미에, 넓은 복도를 뛰어다니는 재미에, 그리고 밖으로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는 넓다란 창을 보고 또 보고 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냈다. 그때는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사택에 돌아와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넘실거리는 황톳빛 흙탕물과 위태위태한 사택들과 아무 일 없다는 듯 우리를 맞이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때 독신자 숙소에 있는 동안 아버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무사히 아버지를 만났다는 반가움보다는 어린 마음에도 고개를 외면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아저씨는 내내 바둑을 두거나 계속 불어나는 물을 지켜보며 사택 앞 다리 앞을 왔다갔다 하셨다 한다. 관에서 나온 분들이 위험하다고 계속 나오라고 권할 때도 두 분은 걱정 말라시며 사택에 머무는 고집을 피우셨는데 결론적으로 두 분이 옳았다. 무슨 배짱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그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 법이라고, 언제나 그 정도에서 멈추는 법이라고 돌아온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 나는 그렇게 무섭게 불어난 흙탕물을 보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결국 자신의 말처럼 아무 일 없이 버텨 낸 아버지가 한편으로는 대단해보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만약 물이 불어 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나중에 조금 더 커서 그때 일을 생각할 때면 나는 생각하곤 했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결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일은 언제나 이전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것 아닌가, 좋은 일이건 불행한 일이건. 그러나 나중에 그때 아버지와 아저씨를 떠올리면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마음에 담았다. 아무리 두려운 일이라도 믿음이 강하면 때로 그 믿음대로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런 마음으로 견디며 맞서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해 여름 물이 불어 독신자 숙소로 피난을 다녀온 후 아이들은 여름만 되면 다시 마을 앞 물이 넘실거릴 정도로 불어서 넓은 현대식 건물에 빵과 우유를 먹으며 마음껏 텔레비젼을 볼 수 있었던 독신자 숙소로 피난갈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사택을 떠날 때까지 내게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