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가을을 넘기기 전에 아버지가 다니던 쌍용시멘트를 그만 두고 이웃 접도 지역인 충북 제천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우리 가족이 살았던 곳은 강원도 영월군 쌍용읍의 회사 사택지역이었다. 두 칸 방에 똑같은 모양의 집들에 가장이 시멘트 회사에 다니는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마흔 다섯 채의 사택에는 각 가구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었고 우리는 31호집이었다.
철조망 울타리가 둘러쳐진 시멘트 벽이 마을 앞 개울과 사택을 나누고 있었고 사택과 공터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작은 구멍가게와 막걸리집과 이발소가 있고 그 맞은편에는 사무직원용 사택이 있었다. 두 사택 사이의 공터에 아버지들이 타고 다니는 출퇴근 버스이자 아이들을 학교에 태우고 가는 통학 버스가 서는 자리가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공터에서 줄넘기를 하며 놀았지만 남자아이들은 주로 축구를 하거나 공터 맞은편 자그만 묏등과 말머리 모양의 바위가 있는 동산에 올라가 말머리 바위에서 묏등으로 뛰어 내리며 놀았다.
사택 제일 북쪽에 미끄럼틀과 시소가 있는 놀이터와 공용목욕탕 또한 아이들의 주된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미끄럼틀 주위로 뛰어다니며 놀았지만 뜨거운 김을 내며 목욕탕에서 흘러나오는 물길을 따라 첨벙대며 장난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놀이 목록이었다. 겨울이면 논에 그 물을 받아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아이들은 하루종일 스케이트를 타거나 대나무로 만든 외발 장대스케이트를 타곤했다. 개울이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는 논이 아니라 마을 앞을 흐르다 얼어붙은 그 개천 위에서 아이들은 하루종일 얼음을 지치며 놀거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만들어준 연을 날리며 놓았다.
목욕탕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개울을 따라 내려가며 이어진 밭에는 콩이며 수수, 조, 옥수수 등이 심어져 있었는데, 몰래 서리한 콩과 옥수수를 구워먹는 재미도 아이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불을 지피느라 연기 때문에 연신 콜록콜록 기침을 해 대고 코와 뺨과 턱은 까맣게 그을리면서도 구운 콩과 옥수수를 먹는 재미에 정신을 놓고 있었던 아이들에게 어둠은 금방 찾아오곤 했다. 겨울이면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를 잡아 구워먹는 재미가 콩서리를 대신했다. 개구리를 잡으려다 더러 눈 먼 뱀을 잡기도 했는데, 상급반 아이들 가운데는 그 뱀을 구워 먹는 것으로 인해 아이들이 감히 넘두도 못낼 용기를 과시하던 아이도 있었다.
반대편 사무직원용 사택 안에는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는 커다란 비단 잉어들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잉어들을 보러 아이들은 떼를 지어 몰려가곤 했다. 사택 옆을 타고 흐르는 개울은 얕았으나 맑아서 아이들은 가재며 미꾸라지를 잡고 멱을 감거나 시멘트 난간에 앉아 개울 옆 풀 숲의 개구리 사냥을 했다. 복날이 가까운 날이면 어른들이 그 다리 아래서 개를 잡아 술추렴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그 주위에 몰려들었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떼어놓으려고 엄포를 놓으며 야단을 치곤 했다. 그러나 어디에서 보건 다리 난간에 매달린 채 어른들의 몽둥이 찜질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개의 모습은 훤히 보였고, 아이들은 한편으로 끔찍스러원 하면서도 끝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그 다리 아래에 있는 빨래터는 아주머니들이 빨래와 수다를 나누는 여성들의 공간이었다.
개울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면 한쪽은 쌍용굴 쪽에서 다른 한쪽은 윗 마을 쪽에서 흘러오는 두 물이 만나는 양수머리가 있는데, 이곳은 물살이 세고 깊이도 깊어 여름철 아이들에게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따끔씩 물뱀이 물 위를 헤엄쳐 다가오는 바람에 아이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마을 뒤쪽에 자라는 뽕밭 또한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 뽕이 익을 때면 아이들의 입술 주위는 온통 검붉은 오디색으로 물들곤 했다. 가을에 아이들은 뽕밭과 그 옆 밭 주위의 풀을 해치고 다니며 메뚜기 사냥에 폭 빠져 지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곤충채집채로 잡아온 메뚜기들을 가져와 엄마에게 건네고는 엄마가 메뚜기들을 냄비에 넣고 볶을 때 부뚜막에 앉아 냄비 속 메뚜기들의 요란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고소한 냄새를 맡고 있다가 그만 스르르 잠에 빠지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도 입학한 후에도 사택 주변은 늘 우리들이 쉼 없이 뛰놀 수 있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하지만 내 기억이 닿는 쌍용에서의 시간이 언제나 즐거움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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