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essay-to remember the past

쌍용에 관한 몇가지 사소한 기억들(2)

그림자세상 2010. 7. 18. 23:14

  사택 앞 개울은 평소에는 그저 작은 개울에 불과했지만 여름이면 늘 큰 물이 져서 무섭게 불어나곤 했다. 대부분은 물이 불어나는 정도로 그쳤지만 드물게 불어난 물이 다리를 넘고 사택까지 밀려들 기세여서 사택의 사람들이 모두 집을 버리고 피난을 가야할 정도로 심각하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느 해 여름이었다. 계속 내리던 비가 마침내 사택 앞 다리를 넘을 기세로 넘실거리자 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사택 사람들에게 모두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세간살이는 남겨둔 채 중요한 짐만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할머니가 살아계시던 때여서 아버지는 할머니, 엄마와 나, 동생들은 사람들과 함께 집을 떠나 대피하도록 했지만 정작 당신은 집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물이 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아버지가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무섭게 불어난 물 앞에서 고집을 피우며 집에 남아계시려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두려울 뿐이었다. 계속 비가 내리는 가운데 불어난 황톳물이 곧 넘을 것처럼 넘실거리는 다리를 건너는 것조차 끔찍한 일이었다. 금방이라도 그 흙탕물이 다리를 무너뜨리고 사택들을 쓸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사택의 친구분 한 분과 집에 남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괜찮을거라고, 걱정말라고 하면서 비가 그치면 괜찮아질거라고, 사택을 쓸어버릴 것 처럼 비가 내리고 개울물이 불었던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한 번도 그런 적 없지 않냐고, 아버지와 아저씨는 끝까지 우기시며 남아계셨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다리를 건넌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우리가 놀던 말머리 바위가 있는 산을 넘어 초등학교 옆에 있는 시멘트 회사의 독신자 숙소로 피난을 가기 시작했다. 이미 불어난 물 때문에 한쪽 굽이진 곳이 끊긴 길로는 차들도 사람들도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빗 속에서 다리를 건너는 것도 무서웠지만 비를 맞으며 산에 올라 나무들과 온갖 찌꺼기들을 휩쓸며 무섭게 굽이쳐가는 거대한 강물같은 황톳빛 흙탕물로 변해버린 사택 앞 개울물을 바라보는 것은 더욱 끔찍한 일이었다. 물은 이미 다리 위로 넘실거리며 금방이라도 사택을 쓸어버릴 것만 같았다. 다리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던 31호 우리집에 있는 아버지와 아저씨가 그 불어난 물에 집과 함께 휩쓸려 내려갈까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엄마도 빗속에서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걱정을 했고, 함께 떠난 마을사람들도 한편으로는 두 분을 걱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두 분의 고집을 탓하기 시작했다.

  비는 계속 내렸다. 한참을 산 중턱에서 불어나는 개울물과 사택과 우리집과 거기 있을 아버지를 걱정하던 마을 사람들은 인도하는 사람들의 재촉에 못이겨 산을 넘어 시멘트 회사의 독신자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산을 넘어 더 이상 불어난 개울물도 사택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는 아버지를 못볼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고집을 피우며 남겠다고 하는 아버지가 미워지기 시작했고, 그런 아버지를 끝내 설득하지 못하고 떠나온 사람들이 미웠다. 두 고개를 다 넘어 독신자 숙소에 도착할 때 까지 비는 쉬지 않고 계속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