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은 4강 진출이라는 기적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었다. 예선전 세 게임과 토너먼트 3게임, 그리고 3-4위 결정전까지 모두 일곱 경기 내내 나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과 하나된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우리팀의 승리를 바랐고 바라던 승리에 기뻐했으며, 선수들의 부상에 가슴아파 하면서도 지칠줄 모르는 투혼에 가슴 찌릿한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독일과의 4강전에서 체력이 고갈된 선수들이 1:0으로 석패하여 결승 진출에 실패한 채 우리나라에서 3-4위전을 하게 되었을 때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게임을 홈에서 축제처럼 즐길 수 있을 테니. 그때 내 마음에 떠올랐던 또 하나의 생각은 그때까지 한번도 그라운드에서 뛰어보지 못했던 선수들이 출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었다.
월드컵 경기, 그것도 4강 진출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한 월드컵 홈 경기에서 국민들의 절대적인 응원을 받으며 뛸 수 있는 기회는 축구선수들에게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가슴벅찬 기회였다. 선수라면 누구라도 그 그라운드 위에 서있는 꿈을 꾸며 운동을 할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출전선수로 선발된 그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예선전과 토너먼트를 거치면서 한번도 게임에 뛰지못한 후보선수들이 6명 정도 있었다. 23명의 출전선수에는 선발되었지만 월드컵 게임이 펼쳐진 그라운드 위에서는 한번도 뛰어보지 못한 채 벤취만 지켜야했던 선수들. 나는 히딩크 감독이 3-4위 결정전에서는 그 선수들 전부는 어차피 힘들겠지만 몇명이라도 마지막 경기를 치를 수 있게 해주리라 기대했고 그러길 바랬다. 물론 여전히 승부는 중요했다. 3-4위전이야 승패에 큰 의미없는 게임이고 승패에 따라 배당금이 달라지지도 않지만 감독의 입장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 홈 경기 아닌가. 그렇더라도 교체로라도 몇몇은 그라운드를 밟아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끝내 그 여섯 명 정도의 선수는 월드컵 홈 경기의 그라운드에서 게임을 하지 못한 채 월드컵을 마쳐야 했다.
2002년 월드컵은 끝났다. 그 이후 우리는 수도 없이 그 경기를 보고 또 보았다. 월드컵 시즌이면 더욱 공중파에서건 케이블에서건 그때의 경기 장면들은 되풀이 방영되었고 그때마다 그때의 감격을 다시 경험하기도 했다. 비교적 조용하게 끝난 2006년과는 다르게 이번 2010 남아공 월드컵도 우리에게 2002년 못지 않은 흥분과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도 여전히 출전선수로 선발은 되었지만 한번도 경기장에서 뛰어보지 못한 채 벤취만 지키다가 돌아온 선수들이 있다.
2002년과 2006, 그리고 2010년 월드컵을 거치면서 그 영광의 순간에 함께 했던 선수들은, 주전이건 후보건, 경기장에서 뛰었건 아니면 경기 내내 벤취에서 동료선수들을 응원하며 마쳤건 간에 모두 그들이 함께 일구어냈던 영광을 함께 누리고 함께 기뻐한 것을, 또 앞으로 그 이야기가 나올때 마다 마찬가지로 누구보다 기뻐하리라고 믿는다. 그들은 개인의 영광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팀워크를 중시하는 프로들이므로.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이 그렇게 마음놓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할 수 있는 것 또한 함께 연습하며 벤취에서 목이 터져라 그들을 응원해주고, 언제건 그들을 대신해 경기장에서 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벤취의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있으므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도 지울 수 없다. 2002년을 함께 했던 여기 이곳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경이적인 성적을 기억하며 환호하고 나쁜 기억으로 추억하는 이가 거의 없을 2002년 월드컵을 떠올릴 때 당연히 즐겁고 환호하면서도 가슴 한쪽이 아릿하게 아픈 사람은 없을까. 혹 일곱 경기가 치뤄지는 내내 단 한번도 그 경기에 선수로 뛰지 못하고 내내 벤취만 지켰던 선수들 가운데 어떤 선수의 가슴에는 화려한 팀 전체가 누린 영광의 햇살만큼이나 강렬하고 짙은 쓰라린 아쉬움과 아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아닐까. 기우이자 어리석은 생각이고 바보같은 걱정이라는 것도 안다. 팀워크로서 운동에 전부를 거는 우리 선수들의 마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회 연속 우승 기억의 강렬함보다 공설운동장에서 뛰어보지 못했던 아픔이 더 크게 각인된 플라타너스 아래의 그 아이처럼 누군가 화려함 속에서 그림자로 존재하던 그 순간의 아픔을 애써 지우려, 아니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환호하고 기뻐하는 순간에, 그 환호와 기쁨의 크기가 더 커지고 텔레비젼 화면이 벤취를 비출 때면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에게 보내는 환호와 응원 못지 않은 마음을 벤취의 그 선수들에게 보내곤 했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 뒤의 어둠은 길고 짙은 법.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그라운드라고 어디 예외겠는가. 내 시선과 관심이 그라운드 위의 환하게 빛나는 선수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 환한 빛 아래 그늘진 어딘가에 있을 선수들의 그림자에게도 자꾸 향하는 것은 아직 내 마음속에 그날 플라타너스 아래서 눈물 떨구던 아이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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