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11)

그림자세상 2010. 7. 18. 15:35

제 3 장

 

빌라 보르게즈에서

 

그 수반 속에서는.....(그늘져 어스름한데)..... 모든 물방울, 모든 존재가 쾌락 속에 죽어 가고 있었다.

쾌락! 이 말을 나는 부단히 되풀이하고 싶다. 이 말이 [복된 삶]의 동의어였으면 한다. 아니 그저 삶이라고만 말했으면 하는 것이다.

아아, 신은 단순히 그것만을 위해서 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여사여사하다고 이론을 붙여 생각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곳은 말할 수 없이 시원한 곳으로서, 거기서는 자기만 하여도 즐거워 마치 나는 여태껏 자는 것의 즐거움을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또 거기에는 감미로운 양식들이 우리가 시장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드리아티끄에서(새벽 3시)

동아줄을 다루는 수부들의 노래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오오, 무척 늙었건만 그렇게도 젊은 대지여, 인간의 짧은 생의 이 쓰고도 달콤한 맛의 감미로움을 네가 안다면, 정말로 네가 안다면!

덧없는 외형이라는 집요스러운 생각이여, 임박한 죽음의 기다림으로 인하여 순간이 얼마나 가치를 갖게 되는가를 네가 안다면!

오오, 봄이여! 한 해밖에 살지 못하는 초목들은 그들의 가냘픈 꽃을 더욱 서둘러 피우지 않는가? 인간에게 봄은 일생동안 한 번밖에 없다. 그리고 기쁨의 추억이 새로 찾아오는 행복일 수는 없는 것이다.

 

피에졸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플로렌스, 근엄한 학업과 영화와 꽃의 도시. 무엇보다도 진지한 도시. 미르타의 열매, 그리고 날씬한 월계수의 화관.

빈칠리아타의 언덕,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창공 속으로 구름들이 녹아드는 것을 보았다. 그처럼 구름이 하늘에 흡수될 수 있는 것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까닭에 나는 몹시 놀랄 뿐이었다. 구름이란 비가 되어 떨어지기까지 그대로 뭉기어 짙어지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모든 구름 송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그리하여 남는 것은 다만 창공뿐이었다. 그야말로 신기한 죽음이었다. 창공에서의 소멸이었다.

로마, 몬테 핀치오에서

그날 나를 기쁘게 하여 준 것은 사랑과 비슷한 그 무엇이었다.---그러나 사랑은 아니었다---적어도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찾는 것과 같은 그러한 사랑은 아니었다---미적 감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여자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었고, 나의 상념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빛]의 발산일 따름이었다고 내가 말한다면, 그대는 나의 글을 이해하여 주겠는가?

나는 그 정원에 앉아 있었다. 태양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마치 하늘의 푸른 빛이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기나 하듯이 대기가 아늑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다, 진정으로 빛은 파동하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끼 위에는 물방울 같은 불꽃이 보였다. 그렇다, 진정으로 그 널따란 길 위에 빛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빛의 흐름 속에서 황금색 거품들이 나뭇가지들 끝에 맺혀 있었다.

 

*

나폴리. 바다와 태양으로 향한 조그만 이발소. 뜨거운 둑길. 들어서며 쳐들어올리는 발. 그리고는 몸을 맡겨 버리듯이 걸터앉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되려는가? 평온. 이마에 흐르는 땀. 뺨 위에서 싸늘하게 거품 이는 비누. 이발사는 수염을 깎고 나서 다시 더욱 능란한 솜씨로 면도질을 하더니, 이번에는 피부를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더운 물에 적신 조그만 해면으로 어루만지며 입술을 쳐든다. 그리고는 향기롭고 산뜻한 물로 얼얼한 피부를 씻는다. 그 다음에는 또 향유로 가라앉힌다. 아직도 움직이기 싫어서 나는 머리를 깎게 한다.

아말피에서(밤중)

알지 못할 그 어떤 사랑을

기다리는 밤들이 있다.

바다를 굽어 보는 조그만 방, 너무나 밝은 달빛이 나의 잠을 깨웠다. 바다 위에 비치는 달빛이.

 

창문으로 가까이 갔을 때, 나는 이제 새벽이 되어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되려니 하였었다---그러나 아니었다---(그것은 이미 충만하게 이루어진 광경)---[달]---<<파우스트>> 제2부에서 헬렌을 맞이할 때처럼 부드럽고 부드러운 달이었다. 황량한 바다. 죽음에 묻힌 마을. 어둠 속에 개 짖는 소리.....창문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고......

인간이 몸 담을 곳이라곤 조금도 없다.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깨어나게 될는지 알 수 없다. 개의 비통한 울음소리. 낮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대라면 하겠는가----(이것을 혹은 저것을)----

고요한 정원으로 나가겠는가?

바닷가로 내려가서 목욕하겠는가?

달 밑에서 회색으로 보이는 오렌지를 따러 가겠는가?

개를 쓰다듬어 달래 주겠는가!

(나는 얼마나 여러 번 자연이 나에게 어떤 몸짓을 요구하는 것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어떤 몸짓을 해주어야 옳을지 몰랐었다).

좀체로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소녀 하나가 계단을 스치어 늘어진 나뭇가지에 매달리면서 담장에 둘러싸인 정원까지 나를 따라왔다. 계단은 정원에 잇달린 테라스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들어갈 수 없어 보였다.

오! 나뭇잎 밑에서 어루만진 조그만 얼굴! 아무리 짙은 그늘일지라도 너의 얼굴빛을 흐리게 하지는 못하리라. 네 이마 위에 늘어진 머리털의 그늘이 언제나 더욱 짙어 보인다.

덩굴과 나뭇가지를 더듬으며 나는 그 정원으로 내려가리라. 그리하여 새들의 보금자리보다도 더 노랫소리 가득 차 그 숲속에서 애정에 사무쳐 흐느껴 울리라---황혼이 내릴 때까지. 분수의 신비스런 물을 금빛으로 물들였다가 이윽고 깊은 어둠 속으로 잠겨 버리게 될 밤이 내릴 때까지.

 

나뭇가지 밑에서 끌어안은 섬세한 육체.

섬세한 손가락으로 진주빛의 살결을 매만졌다.

소리 없이 모래 위에 내려 눕는 그의 섬세한 발을 나는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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