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자전거 여행-김훈

숲은 죽지 않는다 - 강원도 고성 (1)

그림자세상 2010. 7. 16. 23:18

숲은 재난의 자리를 삶의 자리로 바꾸고,

오히려 재난 속에서 삶의 방편을 찾아낸다.  

 

 

 자전거는 7번 국도를 따라 태백산먁과 동해 바다 사이를 내리달린다. 강원도 고성군 송현리 통일전망대를 떠나는 이 길은, 간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울진, ㅍ여해, 영덕, 포항 같은 큰 어항들과 그 사이사이의 수많은 작은 포구에 닿는다. 고깃배가 귀항하는 아침마다 억센 어부들과 목소리 큰 생선장수들로 포구는 시끌벅적하고, 붉은 해가 태백산맥의 푸른 잔등을 비추어, 7번 국도 언저리는 언제난 빛나는 산하 속에서 사람 사는 일의 활기가 넘쳐난다.

  지금, 7번 국도 연변에서 바라보는 태백산맥은 푸른 산이 아니라 시커먼 산이다. 지난 4월의 산불은 능선과 계곡을 다 태우고 길가까지 밀고 내려왔었다. 산맥에는 불탄 나무들이 죽어서 시커멓게 쓰러져 있고, 타다 만 나무들 끌어낸 산봉우리와 능선은 빡빡머리가 되었다. 바위들이 고열을 못 견뎌서 붉게 변색되었고, 그 뜨거웠던 바위 틈새로 파고들었던 청솔모들은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청솔모들은 한사코 바위 틈새의 맨 구석 쪽으로 머리를 처박고 죽어 있었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도피처를 찾았던 것인지 산천을 뛰놀던 그 발바닥의 굳은살은 여러 갈래로 터져 있었다. 쫓기는 청솔모들은 불타는 산봉우리 수십 개를 넘고 또 넘어서 기력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 뜨거운 바위 틈새로 파고들었을 것이다.

   비스듬한 각도로 멀고 깊게 비치는 동해의 아침 해는 산맥의 모든 계속 구석구석에까지 닿는 것이어서 아침의 태백산맥에서는 숨을 곳이 없는데, 그 투명한 햇살이 비치는 아침마다 불타버린 산맥의 검은 잔해는 가차없이 드러난다. 거대하고도 선명한 참혹함이 국토의 등뼈를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다. 7번 국에서는 가도가도 이 지경이다.  

  영동 지방 숲들의 수난은 엎친 데 덮쳐 왔다. 1996년 4월 강원도 고성군의 산불은 '건국 이래' 최대 산불이고,  2000년 4월의 동해안 산불은 '단군 이래' 최대 산불이라고들 한다. '건국 이래' 때 1천2백여만평이 탔다. 여의도 면적의 10배이다. 생태계의 인접 피해는 불탄 지역의 3배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의 30배다. '단군 이래' 때는 '건국 이래' 때의 6배가 탔고, 생태계 인접 피해 규모는 아직 모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들 전문적인 헛소리나 하고 있다.

  '건국 이래' 때 불탄 숲은 대부분 인공조림되었고, 극히 일부(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구성리 일대 100헥타르)는 자연복원되었다. 자연복원이란 말 그대로 사람의 손을 전혀 대지 않고 불탄 나무까지도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렇게 4년이 지난 후 자연복원된 구역이 인공조림된 구역보다 훨씬 더 빠르고 건강하게 숲의 꼴을 회복해가고 있다.

  건강한 숲이란 키 작은 나무에서부터 키 큰 나무에 이르기까지 나무의 층위와 다양성을 확보한 숲이다. 사람이 보기에 무질서하고 어수선한 숲이 건강한 숲이다. 이런 숲이 복원력이 좋고 재난에 대핸 저항력이 크다. 키 작은 활엽수들이 먼저 바람에 씨앗을 날려 불탄 땅에 싹을 튀우고, 타고 남은 그루터기들이 움싹을 길러서 숲은 저절로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숲이 꼴을 갖추어가자 벌레와 작은 짐승들도 저절로 모여들었다. 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고, 사람이 공들이고 돈 들여서 한 일이 아니다. 숲은 저절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