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자전거 여행-김훈

찻잔 속의 낙원 - 화개면 쌍계사

그림자세상 2010. 3. 27. 01:52

시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고

청학동은 관념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낙원을 다 합친 낙원이다.

 

 

  화개(花開, 경남 하동군 화개면)는 꽃피는 땅이다. 그 골짜기에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기도 하지만, 꽃이 없더라도 그 땅은 이미 꽃으로 피어난 마을이다. 세상이 아닌 곳으로 가려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여서, 이 골짜기에서는 신령한 일들이 많았다. 낮은 포근하고 밤은 서늘해서 늘 맑은 이슬이 내린다. 이슬을 맞고 차나무가 자란다. 봄에 이 나무의 새순을 달여 먹으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옛 글에는 "두 겨드랑이 밑에서 서늘한 바람이 인다"([동다송])라고 적혀 있다.

 

  섬진강 화개나루에서 북쪽으로 번나무 숲길 십 리를 가면 쌍계사다. 쌍계사는 두 물줄기 사이다. 육조 능혜의 머리가 이 절에 안장되었다. 절 마당에 1천2백년 전 비석이 서 있는데, 그 비문에 이르기를 "무릇 도(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고 사람은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진감국사대공탑비)라고 하였다. 글 읽는 후인들이 그 문장을 두려워한다.

  쌍계사에서 다시 북쪽으로 십 리를 가면 칠불암이다. 이 절은 반야봉 중턱의 양지바른 언덕 위다. 인도에서 시집온 가락국 허황후의 일곱 아들이 이 언덕에서 성불하였다([삼국유사]). 여기는 늘 양명해서 음습한 그림자가 없고 벌레나 잡것이 얼씬거리지 않는다.

  칠불암에서 동쪽으로 산길 삼십 리를 가면 청학동이다. 청학동은 깊은 산속의 맑은 땅이다. 안개를 마시며 개울물을 퍼먹고 사는 신선들이 모여 있고 푸른 학이 깃들인다고 하는데, 아직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고려 때 노인들의 말로는 "길이 협착하여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수십 리를 가면 넓은 땅이 나타난다. 푸른 학이 살며, 옥토가 가시덤불에 덮혀 있다"([파한집])고 하였다. 칠불암에서 청학동에 이르는 삼십 리 산길은 외지고 가파르다. 길은 끊어진 듯 이어지고 이어진 듯 끊어져서 종잡을 수 없다. 잎이 우거진 여름이나 눈 쌓인 갸울에 길은 보이지 않는다.

 

  청학동으로 가는 길은 찾기 어렵다. 고려 때 문인 이인로(1152~1220)는 이 꼴같잖은 세상을 단칼에 끊어버리기로 하고, 소 두어 마리에 짐을 싣고 청학동을 찾아나섰다. 그는 구례 쪽 코스로 해서 하개 골짜기까지 왔었는데 청학동을 찾지는 못하였다. "신선은 없고 원숭이만 운다"([파한집])라고 바위에 써놓고 그는 돌아왔다.

  3백여 년 후에 조선시대 도학자 김종직(1431~1492)이 다시 청학동을 찾아나섰다. 김종직은 함양에서 출발해서 마천골, 피아골을 거쳐 화개 골짜기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산행 코스는 매우 길었고, 수발 드는 중들이 고생 많았다. 김종직은 청학동이라는 마을을 찾기는 했으나 그곳은 인간 세계와 매우 가까운 곳이어서 여기가 거기인지 기연가미연가하다가 돌아왔다([두류산 기행]).

  그로부터 30년 후에 그의 제자 김일손(1464~1498)도 청학동을 찾아나섰다. 김일손은 진주에서 출발해서 반야봉을 거쳐서 화개골짜기에 당도하였다. 그는 청학동을 찾아냈다. 청학동에서 그의 결론은 '청학동'이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찾을 수 없고, 찾았다 하더라도 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속 두류산기행]). 옛 일들이 이러하니, 낙원에 대한 꿈은 후대로 내려갈수록 점차 깨어져 나가게 마련인 모양이다.

  낙원을 증명하는 일은 낙원의 부재를 증명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지만, 화개 골짜기 차나무 밭에서는 낙원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 헤매지 않아도 될 긋싶다. 청학동에 이르는 양쪽 골짜기는 온통 푸르른 차나무 밭이다.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햇차의 향기는 바람에 실려 이골 저골로 밀려다닌다.

  5월 차나무 밭의 냄새는 풋것의 향기가 습한 육질 속에 녹아 있지만, 5월 찻잔 속의 향기는 이 육질이 제거된 향기다. 시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고 청학동은 관념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낙원을 다 합친 낙원이다. 5월의 찻잔 속에서는 이 접합부의 이음새가 드러나지 않는다. 꿰맨 자리가 없거나 꿰맨 자리가 말끔한 곳이 낙원이다. 꿰맨 자리가 터지면 지옥인데, 이 세상의 모든 꿰맨 자리는 마침내 터지고, 기어이 터진다.

  차는 살아 있는 목구멍을 넘어가는 실존의 국물인 동시에 살 속으로 스미는 상징이다. 그래서 찻잔 속의 자유는 오직 개인의 내면에만 살아 있는, 가난하고 외롭고 고요한 소승의 자유다. 찻잔 속에는 세상을 해석하거나 설명하거나 계통을 부여하려는 논리의 허세가 없다. 차는 책과 다르다. 찻잔 속에는 세상을 과장하거나 증폭시켜려는 마음의 충동이 없다. 차는 술과도 다르다. 책은 술과 벗을 부르지만 차는 벗을 부르지 않는다. 혼자서 마시는 차가 가장 고귀하고 여럿이 마시는 차는 귀하지 않다([동다송]). 함께 차를 마셔도 차는 나누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