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essay-to remember the past

그라운드의 빛과 그림자 (3)

그림자세상 2010. 7. 12. 16:29

  그 이후, 학교를 다닐 때나 직장을 다닐 때 더러 재미로 하고 더러 내기를 하거나 교회 대항, 직장 대항 같은 이겨야 하는 축구 경기를 하기도 했고 많은 경기를 즐겨 보기도 했지만 그때만큼 짜릿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유일한 예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을 것이다. 2002년의 짜릿한 경험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우리 삶에 한 중요한 장면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직접 운동장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더러는 학교 운동장에서 더러는 호프집에서 목청껏 응원하는 가운데 같은 마음으로 하나 되어 그렇게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짜릿함과 행복이 컸다.

  폴란드와의 첫 경기, 미국과의 두번 째 경기, 포르투칼과의 경기에 이어,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전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경기가 없었고, 마지막 터키와의 3-4위전까지 모두 또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이다. 승리한 후 그라운드에서 환호하는 선수들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힘들게 마지막 힘을 쏟아붓는 순간순간 선수들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안타까움도 내 아픔처럼 함께 느끼며 보낸 시간들이었다. 어린시절 내 몸에 각인되었던 경기를 통해 느꼈던 흔적들이 그라운드 위의 그들에게 감정이입의 기폭제가 되어 더러 내가 그들이 된 것 같은 상상 속의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2002년에 우리는, 나는 그랬다. 무지하게 과장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4강에 진출한 2002년의 우리 선수들이 느끼는 기쁨이 6학년 때 군 대항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그때 딱 내마음 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기뻐하는 한켠에서 내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선수들이 있었다. 그 선수들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기쁨보다 안쓰러움이었고 안타까움이었고 동병상련의 마음이었다. 월드컵 4강이라는, 대학민국 국민이라면 누구가 기뻐할 수밖에 없는 영광이 가득한 환한 그라운드의 화려함 속에 그림자처럼 가려진 선수들, 23명의 출전선수에는 포함되었지만 단 한 경기에도 뛰지 못한 바로 그 선수들이었다.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한 이후 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녹색 잔디가 깔린 공설운동장에서 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하루하루는 날아갈 것 같은 날이었을 것이다. 물론 도 대회에서 우리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읍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하지만 도 대회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 경기에 참가하는 많은 학교의 선수들 가운데 장차 축수선수가 되려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고, 또 아예 전문적으로 축구부를 육성하는 학교들도 많이 참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량도 기량이지만 일단 체격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났다. 당시 운동선수들은 한 두해 학교를 늦게 다니거나 '꿇는다'는 표현처럼 일부러 한 두 학년 늦추기도 하던 것이 다반사였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우리 학교는 도 대회에서 큰 점수차로 패하고 돌아왔다. 기본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이기고 지는 문제보다는 잔디운동장에서 뛰어본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6학년에 주전으로 뛰어 우승에 일조했으니 도 대회에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만큼이나 작아 함께 '야마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광수도 나와 같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친구였다. 작지만 빠르고 솜씨있던 녀석이었다. 그런 우리 둘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