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essay-to remember the past

그라운드의 빛과 그림자 (4)

그림자세상 2010. 7. 12. 23:47

  어느날 도 대회를 앞두고 연습을 하던 나와 광수를 선생님이 불렀다.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나와 광수 앞을 뒷짐 진 채 교문 앞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까지 걸어가는 동안 선생님은 땅만 보았다.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뒷짐 진 채 서 있는 선생님 뒤에 나와 광수는 영문을 모른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이윽고 몸을 돌린 선생님의 얼굴에 어린 표정은 뭔가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더 가만히 계시던 선생님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더러 머뭇거리며 애둘러 가기도 하며 여러 말을 했지만 한 마디 말고는 그 어떤 말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 도 대회에 너희 둘은 못 나가게 되었다."

 

  선생님 말씀의 요지는 이랬다. 3회 연속 군 대회에서 우승해 도 대회까지 나갔지만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번번히 큰 점수차로 첫 게임에서 지고 돌아온 선생님은 이번에는 좀 다른 결과를 원했다. 큰 게임차로 지는 이유야 실력차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상대편 선수들에게 체격에서 밀리는 것도 큰 이유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아예 체격이 좋은 후배들을 데리고 가서 적어도 체격에서는 밀리지 않고 지더라도 게임다운 게임을 해보고 근소한 차이로 지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당연히 가장 체격이 작았던 나와 광수를 다른 후배로 대신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의 그런 결정은 일견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근소한 점수차이로 지는 것에 더해 한 번 정도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내게는 없었다. 선생님의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하필 그때여야 했으며 나와 광수여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 뿐이었다. 무엇인가 말을 해야할 것만 같은데 말은 나오지 않고 닭똥같은 눈물만 뚝뚝 떨어졌다. 나는 선생님이 다시 뒷짐을 진 채 연습하는 아이들에게 돌아간 한참 뒤 까지 아무 말도 못하고 교문 앞 플라터너스 그늘 아래 꼼짝 않고 가만히 그렇게 서서 눈물만 죽죽 쏟았다. 그 이후, 나는 축구 연습을 그만 두었다. 

  애초부터 축구나 어떤 종목이건 운동을 직업으로 생각해 본 일은 없었다. 그 세계는 다른 세계였다. 축구는 그저 조금 더 열심히 하는 특별활동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공설운동장에서 뛸 수 있겠다는 희망은 달랐다. 축구를 그렇게 열심히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좋아서였다. 재미있어서였고 친구들과 함께 뛰는 그 시간과 경기하는 스릴, 이겼을 때의 희열, 또 패했을 때의 아쉬움까지 어느 하나 가슴 뿌듯하게 재미있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에 못지 않게 언젠가 녹색 잔디가 부드럽게 깔린 공설운동장에서 뛸 수 있는 희망도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바로 앞에 보이는 희망이었고, 작은 읍내 초등학교 학생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진 꿈이기도 했다. 그 꿈은 이루어졌다 생각하는 순간 산산히 깨어졌다.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얻은 것이 있다. 교문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그날 이후 나는 운동을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전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와 노력이 갈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축구반 연습을 줄이는 대신 속독반 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것으로 나는 내 마음속 슬픔과 타협을 했다. 하지만 상처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듬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마을을 흐르는 강 옆에 작은 잔디 운동장이 생겼다. 아이들과 그곳에서 축구를 할 때 마다 공설운동장이 생각났다. 잔디운동장은 잔디운동장이나 마음속 그 공설운동장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포항 시내 교회 학생축구대회가 포항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잔디운동장이었지만 꿈 속의 그 공설운동장을 대신 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회사를 다닐 때 부 대표로 전사 체육대회 대표로 시설도 잔디도 잘 갖춰지고 관리된 포철 운동장의 잔디구장에서도 경기를 했다. 그러나 그곳도 공설운동장은 아니었다. 그날의 아픔은 아주 오래 남았다. 잊혀진 것 같다가도 문득문득 그렇게 진한 아쉬움으로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 학교의 군 축구대회 3회 연속 우승은 기뻤고 아주 한참 동안 그때 함께 했다는 자부심을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승할 때의 기쁨과 더불어 공설운동장에서 경기를 하지 못한 아픔은 교문 앞 플라타너스 그늘의 그 시간과 함께 생생하게 되살아 났다. 어떨 때는 기쁨보다 아픔이 더 크게 남아있기도 했다. 사실은 그럴 때가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