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essay-to remember the past

묏등에서 잠들다 (4)

그림자세상 2010. 7. 11. 23:36

   얼마나 있었을까. 온 몸을 훑어내리는 으스스한 한기와 사방에서 요란스런 풀벌레 소리에 문득 눈을 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사방은 깜깜 산속이고 하늘엔 그 사이 더 많이 돋은 별들이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한데 모여 초롱초롱 맑은 눈동자들을 깜빡이고 있었다. 바람에 스치는 풀섶의 풀과 나뭇가지 소리는 한밤의 고요함 속에 더욱 크게 울렸다. 온몸이 서늘했다. 마음은 더 서늘했다. 잠깐 잠든 사이 사라졌던 온갖 걱정과 두려움들이 다시 밀물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울음이 북받쳐올랐다.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운다고 누가 들을 일도 아니었겠으나 마음속에서 터진 울음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훔치고 훔쳐도 계속 흘러내렸다. 그러나 나는 그 울음이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않게 했다. 더 두려울 것 같아서, 내 울음소리가 내 마음에 더 싸한 얼음처럼 박힐 것 같아서, 소리내어 울면 정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 울음소리는 속으로 삼키고 눈물만 쏟아내고 또 쏟아냈던 것 같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순간, 그 두려운 순간에도 내 몸에 강렬하게 느껴지던 묏등 뗏장의 따뜻함이었다. 그 따뜻함은 산 속에서 길 잃고 울고 있는 나를 잡아주는 유일한 버팀목 같았다. 뗏장은 따뜻했다. 그 묏등의 뗏장에 기댄 채 나는 잠이 들었고, 그 뗏장에 기댄 채 나는 소리도 없이 울고 있었지만, 그 따뜻한 뗏장에 기댈 수 있어서 왠지 그 두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기억도 할 수 없는 순간의 연속처럼, 문득 눈 한 번 감았다 뜨니 억겁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 처럼,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가없는 길처럼 시간은 길었다 짧았다 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이 그렇게 묏등에 기대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그러나 내게는 천둥보다 더 크게, "용아! 용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찾아나선 것이었다. 온 사방을 다 확인해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 녀석을 찾아 산길을 더듬어 오신 것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흔들리는 횃불을 볼 수 있었던 그때 마음에 밀려들던 안도감이 잠시 머추었던 눈물을 다시 쏟아내었다. 그러나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 그 안도감의 발목을 잡고 걱정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죄가 휘영청 솟은 달보다 더 크게 마음에 달려들었다. 순간 나는 움츠려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찾아도 걱정, 못 찾을까봐 걱정, 두 걱정 사이에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사는 일이 먼저였던 것일까. 그래도 얼른 사람들이 내게로 와주기를, 나를 찾아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횃불은 이쪽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왔던 길 쪽으로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그 속에 섞여 나를 찾는 아버지의 굵은 목소리도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았다. 요즘 표현대로 하자면, 정말, 대.략.난.감. 더 멀어지기 전에 나 여기 있다고, 여기 있다고 소리쳐서 사람들을 돌아오게 해야 하는데, 나를 찾게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저 여기 있어요~'라고 소리쳐 부르자니 요즘 말도 하자면 '참 모냥 빠지는 일'이었다. 정황상 나는 최대한 비극적인 모습으로 발견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아버지가 내 모든 잘못을 기억하기보다는 나를 찾았다는 안도감을 더 느낄 수 있게 할 만큼의 안쓰러운 모습으로 발견되어야 할 터였다. 어린 나에게도 그 정도의 분별력이 생길 만큼 이제 숲 속에 홀로 남겨져 잃게 될 위험 상황은 벗어난 지점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시간은 별들이 하늘을 수 십 번은 돈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길고 길었다. 그러나 나는 나 여기 있다고, 소리칠 수 없었다. 울음이 쏟아져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목에 자물쇠는 채운 채였다. 그 순간, 횃불 하나가 다른 횃불들로부터 방향을 돌려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나는 참는다고 참았지만 아마 울음소리가 들렸거나 그랬던 모양이었을 것이다. 밝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횃불 아래 놀라고 화가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이 언뜻 비쳤다. 

 

  결국 산속에서 길을 잃은 채 묏등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비극적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이 그보다 끔찍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의 상황은 그저 혹 이글을 읽을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어쨌건 아직 나는 살아있다. 그 이후 그만 복부절개된 우리집 돼지저금통도 다시는 볼 수 없었고, 학교앞 만화방에서 내 모습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 이후 여름에 큰 홍수가 나서 사택이 물에 잠길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학교옆 독신자 숙소로 마을사람들이 피난을 가게 되었을 때 말고는 나는 그 산길로도 다시는 다니지 않았다. 1학년을 마치자 마자 사택도 떠나고 접도 지역에 있던 그 학교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하게 되었으니 사실 더 이상 그럴 기회도 없었다.

 

  기억 속에 또렷한 이 일을 가끔 기회가 있을 때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었다. 혹시 어린 나의 상상이 빗어낸 일은 아니었을까. 그저 어느 하루 그래보고 싶었던 일을 내 마음의 그림자가 그렇게 생생하게 각색하여 기억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만화방과 산 속의 그 묏등의 기억, 그리고 나를 찾으러 왔던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에 대한 그 그림이 너무도 또렷하여 결국 나는 아버지에게 넌즈시 물어보았다. 혹 그런 일 기억하시냐고.

 

  "그때 난리가 났었지, 마을에서 너 잃어버렸다고, 소동이 났었다. 네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나보구나. 기억하지. 산으로 너를 찾으러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갔던 일....쌍용에서 네가 기억하는 일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고만할 때 네가 어지간히 영리했으니...."

 

 이로써 내 기억 속, 묏등에서의 따뜻했던 잠의 장면은 나에게 더욱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나에게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는 것은 여전히 할머니의 말씀이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묏등에 가거라. 묏등 주인이 지켜줄게다."

 

  이후 나는 할머니의 그 말을 잊은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드물게 야간에 산을 가기도 했던 더 젊은 시절에 어두운 산 속에서 만나는 묏등도 두려움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줄 때가 많았다. 물론 마음에 떠오르는 이따끔씩의 두려움까지 모두 떨쳐낼 수는 없는 순간들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내가 내 마음속에 보듬어 안는 것은 할머니의 말씀과 그날 저녁, 길 잃은 나를 보듬어 주었던 묏등의 따뜻함, 그것이었다. 

 

  그로부터 또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할머니의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 말씀처럼 어떤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묏등도 존재하지 않는 묏등의 주인도 아니라 어쩌면 그 묏등에 기대어 찾아가는 내 마음이 아닐까라고. 할머니의 말씀을 여러번 떠올릴 기회가 있었다. 그럴때 마다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내 마음속에서 내가 믿고싶은 것이 하나 생겼다. '묏등의 주인' 즉 영혼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영혼이, 많은 사람들의 믿음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면, 내 마음을 알 터이니 어찌 해코지 하겠는가. 내 마음이 그리 기대고 의지하고 찾아가는데, 그 마음을 아는데, 어찌 보듬어 안지 않겠는가.

  하여, 또한 나는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살아있을 때 말로 다 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뒤로 한 채 예기치 못하게 우리 곁을 떠난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형언할 수 없는 숱한 슬픔 가운데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 존재가 내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언제 어디서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보고 있을 것이라는 바로 그 이유 하나라고. 아주 오래전 그날, 산속에서 길 잃고 헤매다 묏등을 찾아 잠들었던 그 어린아이의 마음에 할머니의 말씀이 전해준 것도 바로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