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essay-to remember the past

묏등에서 잠들다 (2)

그림자세상 2010. 7. 11. 17:36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남짓 지나고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는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 버스로 통학을 해야할 만큼 사택에서 멀리 있었다. 8시 20분 경이면 사택 앞 공터에서 버스가 아이들을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저학년은 12시 30분 경, 고학년은 3~4시 사이에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버스로 20분 조금 더 걸리는 정도의 거리였으니 아이들이 걸어다니기는 힘든 거리였다. 하지만 고학년들 가운데는 가끔 그 길을 걸어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토요일 같은 경우 더러 지름길을 가로질러 집에 오기도 했다. 산을 넘는 것이었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산이라기보다는 고개 정도였을 터였지만 저학년들은 엄두도 못 내고 고학년들의 경우 간혹 그 산을 넘어온 것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산을 둘 넘으면 그 마지막 내리막이 사택으로 이어지는 곳이었고, 그곳에 말모양을 한 바위와 묏등이 있는 우리들의 놀이터가 있었다. 그러나 저학년 가운데 산을 넘어 집에 오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산길도 길이거니와 버스를 타고 오가는 재미에 폭 빠져있을 때였으니 말이다.

  나는 다른 데 폭 빠져있었다. 만화였다. 학교앞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우리가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도 작은 문방구와 만화가게가 있었다. 사실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만화를 볼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 만화를 보고싶었던 아이들은 저학년들이 타는 차를 지나치고 고학년들을 데리고 가는 버스 시간 까지 만화를 보고 그 버스를 타고 집에 오곤 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물론 아주 이따끔에 불과했지만. 그럴만큼 용돈을 받지 못했다. 아니 아예 용돈이 따로 없었다. 내가 늦게 오겠다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남아서 하고가라는 일이 있어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말 없이 그 버스를 타지 않고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가는 것은 며칠 동안의 내 수고의 결과였다.

  여느 집이나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도 빨간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이 녀석이 제법 튼실해서 아버지나 엄마, 더러는 나까지 어찌어찌 모은 돈으로 제법 묵직해질 때가 있다. 용돈이 따로 없었던 내가 만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돼지의 도움을 받는 길뿐이었다. 어느 정도 튼실해져서 조금 살이 빠져도 모를 때쯤 되면 내 작전이 시작되었다. 표가 나지 않게 돼지저금통의 동전을 하나씩 하나씩 며칠을 두고 빼내는 것이다. 부모님께 들키지 않고 표도 나지 않게 하는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금 잘못하면 돼지저금통에 흠이 생기고, 또 욕심을 내서 한꺼번에 많이 빼내면 금방 탄로나게 마련일 것이었다. 동전을 빼내는 데는 아버지의 도루코 면도날을 이용했다. 요녀석이 아주 날씬하고 탄력성이 좋아서 돼지저금통에 흠을 내지 않을 뿐 아니라 옆으로 뉘여 동전 투입구에 넣고 동전을 올려 빼내면 동전들이 수월하게 빠져나왔다. 물론 하루에 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한꺼번에 많이 할 수도 없으니 만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모으려면 많은 시간이 들었다.

  어느 하루 드디어 긴 각고의 노력 끝에 원없이 만화를 볼 만큼의 동전이 수중에 생긴 날이 왔다. 아침부터 작전을 세워 학교에서 늦어서 오후 고학년반 차를 타고올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해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왔다.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시간은 더디게 갔다. 드디어 마치는 시간, 종이 울리고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학교앞 만화방으로 달려간 나는 원없이 보리라, 만화삼매경에 폭 빠졌다. 그때 내가 좋아하던 만화는 그림이 많은 것이 아니라 말풍선 속에 대사나 설명의 지문이 많은 만화였다. 만화를 보는데도 그림만큼이나 아니 그림보다 더 그 그림에 달린 말이 관심을 끌어야 보곤했다.

  돈이 되는대로 만화를 빌려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다. 제법 긴 시간 동안의 노력의 결과는 그만큼의 달디 단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만화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긴 달콤함의 끝에 번쩍 정신이 들었을 때 고학년들이 탄 학교버스까지 이미 떠난 후였다. 시간은 이미 여섯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는 길이라고는 3~40분마다 오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거나--이는 돈이 없으니 힘든 일이었다. 만화가게에서 버스비를 빌려 타고갈 수도 있을 것이었으나 초등학교 1학년에게 그런 생각은 무리였다-- 신작로를 따라 한 시간이 훌쩍 넘고도 남을 길을 걸어가거나--이것은 돈을 빌려 버스를 타고 가는 일 만큼이나 무리같아 보였다. 먼 것도 먼 것이었지만 시멘트 공장이 있는 길 옆이라 길을 걸어가는 것 자체가 겁이 나는 일이기도 했다-- 아니면 마지막으로 산을 넘는 것이었다.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산을 넘어야 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넘으면 되겠다 싶었다. 나는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하늘을 보면서 학교를 지나 시멘트 공장의 독신자 숙소 뒷길을 지나 산속으로 난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아직 환한 하늘을 믿고서. 그러나 한 고개를 넘자마자 그런 내 믿음과 짐작은 산산조각났다.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내 앞을 막아선 것은 벌써 어둑해지다 못해 어느 한켠으로는 두껍게 번져가는 어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