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자전거 여행-김훈

도요새에 바친다(2)

그림자세상 2010. 1. 3. 13:01

갈대는 바람과 더불어 피고진다

 

 

갯가의 풀들은 바다 쪽을 갈 수록 키가 작아진다. 갈대가 사람 쪽으로 가장 가깝고, 갈대숲 너머는 갯잔디, 그 너머는 칠면초, 그 너머는 퉁퉁마디이다. 밀물 때면 먼 풀들은 물에 잠기고, 새떼는 갈대숲으로 날아든다.

 

"바람 속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풀들은 빛나는 꽃을 피우지 않고, 영롱한 열매를 맺지 않는다. 갈대나 억새가 그러하다. 갈대는 곤충을 부르지 않고, 봄의 꽃들처럼 사람을 유혹하지도 않는다. 갈대는 바람 부는 쪽으로 일제히 쓰러지고 바람의 끝자락에서 일제히 일어선다.  갈대는 싹으로 솟아오를 때부터 바람에 포개지는 모습을 갖는다. 뿌리를 박은 땅과 바람에 떠도는 씨앗의 하늘 사이에서  갈대는 쓰러지고 일어선다. 갈대는 초겨울에 흰 솜 같은 꽃을 피우고, 바람이 마지막 씨앗을 훓어낼 때까지 갈대의 뿌리는 바람에 끄달리면서 바람에 불려가지 않는다. 갈대의 엽록소는 다른 풀들의 엽록소처럼 햇빛에 빛나지 않는다. 갈대에게는 푸르른 기쁨의 시절이 없다. 갈대는 새싹으로 솟아오르는 시절부터 바람에 포개진다.

 

그것들은 어렸을 때부터 땅에 얽매인 채로 바람에 풍화되어간다. 4월의 빛나는 산하에서는 겨울을 난 갈대숲이 가장 적막하다. 모든 씨앗들이 허공으로 흩어진 뒤, 묵은 갈대숲은 빈 껍데기로 남아서 그 껍데기까지도 바람에 불려간다. 손으로 만지면 먼지처럼 바스라진다. 바다로 불려간 씨앗들은 다 죽고, 갯벌 위로 떨어진 씨앗에서 어린 갈대 싹들이 돋아나 다시 바람에 포개진다. 이제 갈대 줄기가 쓰러질 차례다. 그 갈대숲 속에 새들의 날개 치는 소리 들린다. 만경강 하구의 갈대숲은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