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자전거 여행-김훈

만경강에서 -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1)

그림자세상 2009. 12. 19. 21:48

  밀물의 서해는 우주의 관능으로 가득하다.

 

  달이 하루에 두 번씩 물을 끌어당겨서 바다를 부풀게 하는 자연 현상과 달이 한 달에 한 번씩 여자의 목숨을 빨아당겨서 부풀게 하는 생명현상이 모두 다 조(潮)이다. 밀물의 서해는 우주의 관능으로 가득하다.  

  내 조국의 서해는 어떠한 바다인가. 서해는 조국의 여성성이다. 달에 이끌려 서해는 발해만 깊숙이까지 가득 차올라 산둥 반도와 랴오둥 반도를 적시고, 한반도 서쪽 연안에 넘친다. 그때, 연안은 부풀어오르고 서해에 닿은 모든 강들의 숨결은 낮아져서 강은 바다를 내륙 깊숙이 받는다. 달이 바다를 국토의 안쪽으로 밀어올리고, 새떼들이 앉을 곳을 찾아 갯벌 쪽으로 날아올 때 밀물의 끝자락에 실리는 낡은 어선 몇 척 포구로 돌아온다.

  위는 중국 대륙으로 막히고 아래는 동중국 쪽으로 열린 이 오목한 내해에서 달은 물을 북쪽으로 끌어당겨셔, 대륙의 연안을 압박하고도 갈 곳 없어 넘쳐나는 서해는 모든 강들이 하구로 파고들고 반도의 해안에 포개진다. 그래서 서해의 관능은 반도의 남쪽 끝, 영산강 하구에서는 잔물결로 주름지면서 섬새하고 부드럽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그 숨소리가 커져서 한강 하구에 이르면 해일처럼 힘차고 숨막힌다.

  대동강은 어떤가. 가보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 서해의 힘은 더욱 크게 하구로 파고들고 연안으로 안겨올 것이 틀림없다. 서해와 달의 당기고 끌리는 모습이 저러하므로 조국의 서쪽 강들은 서해에 닿는 하구에서 저마다의 사랑과 저마다의 소멸의 표정을 따로따로 갖는다.

  동해로 흘러드는 강들은 날카롭게도 명징하고 눈부시다. 동쪽의 강들에는 산의 격절감이 녹아서 흐른다. 가파르고 빠른 강들이 일출을 향해 나아간다. 서해에 닿는 강은 들을 흐른다. 그래서 서쪽의 강들은 유장하고도 아득하다. 크고 흐린 강들이 해 지는 곳을 향해 느리게 나아간다. 서해는 그 많은 강들을 받아내고 또 거슬러오른다. 서해는 연안의 수많은 작은 포구를 먹이는 거대한 어머니 포구와도 같다.

  만경강은 아직 파행(破行)하는 자유의 강이다. 큰 댐이 없고, 하구언이 없고, 시멘트 제방이 없고, 강변도로가 없고, 수증보가 없고, 강가에 갈비 먹는 집이 없어서, 비틀거리면서 굽이치는 유역은 언제나 넓게 젖어 있다. 바다가 수평선 너머로 물러간 저녁 무렵의 하구에서, 강의 크나큰 자유는 아득한 갯벌 위에서 헐겁고 쓸쓸했다.

  전북 군산시 옥구 염전에서 출발하는 자전거는 만경강 하구를 따라 강을 거슬러올라가서 만경대교를 건너고 만경평야를 건어고 다시 만경강 하구를 따라 내려와서 전북 김제시 심포리 갯가로 간다. 심포리 바닷가에서 만경강은 동진강과 만나 바다와 합쳐지는데, 달이 물을 깊이 빨아당기는 사리간조의 만경강 하구에서 바다는 물의 바다가 아니라 갯벌의 바다였다. 갯벌의 지평선 너머에서 바다는 풍문처럼 반짝이면서 밤의 내습을 예비하고 있었고, 강의 대안 쪽에서 산맥은 기세를 낮게 죽여가며 노을 속으로 잠겨갔다. 간조와 만조 사이의 젖은 갯벌 위에서 저녁의 빛들은 비늘로 퍼덕거렸다.

  군산에서 김제를 거쳐 부안에 이르는 만경강, 동진강 하구 언저리는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선 전체가 갯벌이다. 폭 20킬로미터가 넘는 갯벌도 있다. 김제시 심포항에서 썰물 때 갯벌을 가로질러서 끝까지 걸어가면 밀물에 휩쓸려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조개를 잡는 갯가 어민들은 갯고랑을 따라 배를 타고 드나든다. 해양지질학자들은 서해의 현재 해안선이 8천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서해는 젊은 바다이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그토록 넓은 갯벌을 일구어 낸 것은 내륙 깊숙이 달려드는 이 젊은 바다의 힘이다.

  서해는 깊이 밀고 멀리 당긴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의 완충이며 진행형의 대지이다. 갯벌은 오목하고 부드럽다. 바다 쪽으로 나아갈수록 갯벌의 입자는 굵어진다. 육지 쪽은 뻘이고 바다 쪽은 모래이다. 뻘은 물의 힘이 약한 내륙 쪽에 가라앉고 모래는 물의 힘이 센 먼바다 쪽에 가라앉는다. 모래가 뻘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굵은 입자일수록 멀리 가서 가라앉아, 사람과 가까운 쪽이 가장 부드럽다.

  그래서 그 넓은 갯벌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가지런한 퇴적물의 스펙트럼을 이룬다. 갯지렁이와 게는 뻘에서 살고 조개는 모래에서 산다. 게는 뻘을 먹고 살고 조개는 물을 먹고 산다. 뻘과 물 속에서도 일용할 양식은 있다. 물고기들은 게를 잡아먹고 새들은 조개를 잡아먹는다. 그래서 게와 조개들은 뻘 속에 구멍을 파고 살거나 바위에 착 달라붙어서 산다.

  뻘에는 수억만 개의 구멍이 있다. 갯지렁이는 구멍 위로 머리를 내놓고 산다. 이 구멍들이 뻘에 공기를 불어넣어 갯벌은 숨쉰다. 그것들이 살아가는 꼴에는 이 세상 먹이사슬 맨 밑바닥의 비애와 평화가 있다. 그리고 구태여 고달픈 진화의 대열에 끼여들지 않은 시원(始原)의 순결이 있다.

  공깃돌만한 콩털개와 바늘 끝만한 작은 새우들도 가슴에 갑옷을 입고 있다. 그 애처로운 갑옷은 아무런 적의나 방어 의지도 없이, 다만 본능의 머나먼 흔적처럼 보인다. 그래서 바다의 새들이 부리로 갯벌을 쑤셔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을 때, 그것들의 최후는 죽음이 아니라 보시이다.

  갯지렁이의 구멍은 밀물에 쉽게 쓸려버려서 갯지렁이는 끊임없이 흙을 뱉어내며 새 집을 지어야 한다. 갯지렁이의 이 기구한 무주택의 운명이 갯벌에 지속적으로 산소를 불어넣어, 갯벌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터전이 된다. 갯지렁이는 온몸의 마디를 뻘밭에 밀면서 기어간다. 갯지렁이는 죽음을 통과하듯이 온몸을 뒤틀면서 뻘 속을 헤치고 나간다. 갯지렁이가 기어간 뻘 위의 자국은 난해한 문자와도 같고, 고통스런 글쓰기의 흔적과도 같다.

  동죽조개는 껍데기에 나이테는 갖는다.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 성긴 태는 조개의 여름이고 촘촘한 테는 조개의 겨울이다. 모든 조개들이 그 껍데기에 삶의 고달픔과 기쁨들을 기록한다. 해양생물학자들은 조개껍질을 들여다보고 조개의 연륜뿐 아니라 조개의 일륜까지도 읽어낸다. 조개의 하루가 그 껍데기 위에 기록되고,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나갈 때 조개의 생명의 안쪽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의 흔들림이 조개껍질 위에 미새한 음파처럼 퍼져나간다. 밀물 때 그 음파의 폭은 넓고, 썰물 때는 좁다. 내륙 깊숙이 달려드는 힘센 서해는 연안의 모든 조개껍질 위에 그 파도의 무늬를 새겨넣는다. 만경강 하구에서, 조국의 서해는 그렇게 부풀어올라서 가득 찼고, 그렇게 멀어져갔다.

 

'Texts and Writings > 자전거 여행-김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요새에 바친다(1)  (0) 2010.01.02
만경강에서 -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2)  (0) 2009.12.20
망월동의 봄  (0) 2009.12.12
지옥 속의 낙원(3)  (0) 2009.08.13
지옥 속의 낙원(2)  (0) 200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