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자전거 여행-김훈

만경강에서 -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2)

그림자세상 2009. 12. 20. 14:31

  바다의 짠맛과 햇볕의 향기로 소금은 탄생한다

 

 

  옥구 염전은 올해의 첫번째 소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갯고랑에서 끌어올린 바닷물이 6단계의 저수장을 거치면서 증발하고 마지막 결장지에서 소금을 이룬다. 염전 사람들은 소금이 결장지 바닥에 엉기는 사태를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소금은 멀리서 오는 소식처럼 조용히 결장지 바닥에 나타난다. 옥구 염전은 유하식 염전이다. 제 1 저수장의 위치가 가장 높고, 바래어지는 바닷물은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지막 결장지에 당도한다.

  소금은 맛의 근원이다. 소금은 단지 짠맛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맛을 맛으로 살아나게 한다. 재래식 천일염에서는 쓴 소금을 가장 나쁘게 알고, 짠 소금이 그 다음, 짜고 또 향기로운 소금을 최상품으로 친다. 소금의 속성은 고요해야 한다. 짜고 향기로운 맛이 소금의 핵심부에 고요히 안정되어 있어야 하고, 어떤한 잡것도 거기에 섞여서는 안 된다. 짠맛은 바다의 것이고, 향기의 햇볕의 것이다.

  햇볕과 바다의 정수가 소금 알 속에서 고요해야 한다. 대체로 알이 굵은 소금이 고요한 소금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염전의 물이 흔들리는 날에는 좋은 소금을 거둘 수가 없다. 소금의 안정이 흔들려서 소금 알이 잘아지고 쓴맛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는다. 흐린 날 거두는 소금도 좋은 소금이 아니다. 이런 소금들은 알이 잘고 결장지 바닥에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좋은 소금은 바닥에 달라붙지 않고, 모래처럼 서걱거린다. 염전 사람들은 날이 흐리고 비가 올 조짐이 보이며 결장지의 물을 땅 밑의 저장고 속으로 감춘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뜨거운 폭양 아래서 짜고 향기롭고 굵은 소금은 익는다. 이런 소금의 삼투력은 깊고 그윽하다. 이런 소금이 젓갈을 삭히고 재료들의 향기를 드러나게 한다. 바람 부는 날의 들뜬 소금은 쓰다. 가장 고통스런 날에 가장 영롱한 결정체들이 염전 바닥에 깔린다. 옥구 염전에서 '소금이 온다'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염전 사람들한테 이런 것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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