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5)

그림자세상 2009. 12. 17. 00:10

  3

  나타나엘이여, 그대에게 기다림을 이야기하여 주마. 나는 보았다. 여름에 벌판이 기다리는 것을.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을. 길 위의 먼지들은 너무도 가벼워져서 바람이 일 때마다 휘날렸다. 그것은 이미 욕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조바심이었다. 땅은 물을 더 많이 받아들이려는 듯이 말라 터지고 있었다. 광야의 꽃향기는 거의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태양 밑에서 모든 것이 넋을 잃고 있었다. 우리들은 매일 오후에 테라스 밑으로 가서 눈부신 햇빛을 간신히 피하면서 쉬었다. 바야흐로 화분을 지닌 송백과의 식물들이 번식 작용을 멀리 퍼뜨리려고 가지를 너울너울 흔들고 있는 때였다. 하늘에는 비구름이 뭉기고, 온 자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새들마저 소리를 죽이고 있기에 숨막힐 듯 엄숙한 순간이었다. 땅으로부터 불 같은 바람이 일어 모든 것이 쓰러져 버리고 말려는 듯하였다. 송백류의 화분이 황금 연기처럼 가지에서 쏟아졌다---이윽고 비가 내렸다.

  나는 하늘이 새벽을 기다리며 떠는 것을 보았다. 하나씩 하나씩 별들이 꺼져 가고 있었다. 목장은 이슬로 뒤덮혔었고 공기는 싸늘한 애무의 촉감만을 남겨 주었다. 얼마 동안 아리숭한 삶이 졸음에 못 이겨 눈을 뜰 생각이 없는 듯 아직도 피로가 가시지 않은 나의 머릿속에는 혼수상태가 깃들고 있었다. 나는 숲 기슭까지 올라가 앉았다. 온갖 짐승들은 날이 새게 되었다는 확신 속에서 다시 움직이며 즐거움을 도로 찾았다. 그리고 삶의 신비가 나뭇잎들 사이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그러더니 날이 새었다.

  나는 또 다른 새벽들을 보았다---나는 또 밤의 기다림을 보았다.


  나타나엘이여, 그대의 마음속에서 기다림은 욕망이기보다는 다만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기 위한 한갓 마음의 준비여야 할 것이다. 그대에게로 오는 모든 것을 기다려라. 그러나 그대에게로 오는 것만을 원해야 한다. 그대가 가진 것만을 원하여야 할 것이다. 하루의 어느 순간에라도 그대는 신을 온전하게 가질 수 있음을 알라. 그대의 욕망은 사랑이어야 하며, 그대의 소유는 사랑에 넘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효과 없는 욕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슨 일이냐! 나타나엘이여, 그대는 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신을 갖는다는 것은 신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 산길 모퉁이에서, 발라암이여, 그대는 그대의 나귀가 멎어선 곳에서 눈앞에 신을 보지 않았던가? 그대가 신을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나타나엘이여,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신을 기다린다는 것은, 나타나엘이여, 그대가 이미 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을 행복과 구별하지 말라. 그리고 그대의 온 행복을 순간 속에서 찾으라.


  마치 동양의 창백한 여자들이 그녀들의 온 재물을 몸에 가지고 다니듯이, 나는 나의 모든 재산을 내 속에 지녔다. 나의 생애의 어떤 사소한 순간에도 나는 내 속에 내 재산의 총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재산은 여러 가지 유다른 물건들을 합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나의 한결같은 열애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나의 재산을 전적으로 내 힘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간직하였던 것이다.


  마치 하루가 거기에 죽어 가기라도 하듯이 저녁을 바라보라. 그리고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기라도 하듯이 아침을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다.


  오오, 나타나엘, 머리가 피로한 것은 모두 잡다한 그대 재산 때문이다. 그 [모든 것] 중의 어느 것을 좋아하는지조차 그대는 모른다. 그리고 삶만이 유일한 재산이라는 것을 그대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가장 짧은 순간일지라도 죽음보다 강하며 죽음은 모든 것이 끊임 없이 새로와지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삶들을 허용하는 것에 불과하다---삶의 어떤 형태라도 자기를 표현하기에 필요한 시간보다 더 오래 [그것]을 붙잡아 두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대의 말이 지상에 울리는 순간은 행복할진저. 그밖의 시간에는 귀를 기울여 들으라. 그러나 그대가 입을 열 때는 귀를 기울이지 말라.

'Texts and Writings > 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상의 양식(7)  (0) 2010.01.28
지상의 양식(6)  (0) 2009.12.29
지상의 양식(4)  (0) 2009.12.10
지상의 양식(3)  (0) 2009.12.08
지상의 양식(2)  (0) 2009.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