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2)

그림자세상 2009. 12. 5. 13:03

   제  1  장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나의 게으른 행복은 이제 눈을 뜨도다.--하피즈


                                     1

  나타나엘이여, 도처 이외의 곳에서 신을 찾기를 바라지 말라.

  피조물마다 신을 가리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어느것도 신을 드러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시선이 자기 위에 머무르게 되자, 어느 피조물이건 우리로 하여금 신에게 등을 돌려 대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발표하거나 일을 하고있는 동안, 나는 반대로 머리로 배운 모든 것을 잊어 버리느라고 3년 간 여행을 하며 지냈다. 배운 것을 털어 버리는 그러한 작업은 느리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강요당했던 모든 지식보다 나에게는 더 유익하였으며, 진실로 교육의 시초였던 것이다.

  우리들이 삶에 흥미를 갖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해야 하였는지 그대는 도저히 모르리라. 그러나 삶이 우리의 흥미를 끌게 된 이제는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우리를 열광케 하고야 말 것이다.


  과오에서보다 그것을 벌 주는 속에서 더 많은 쾌감을 느끼며 나는 즐거이 나의 육체를 벌하였었다---그저 단순히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에 그토록 도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상이라는 생각일랑 아예 마음속에서 없애 버릴것, 정신에 대한 커다란 장애가 거기에 있다.


  .........우리의 길이 확실치 않음이 일생 동안 우리를 괴롭혔다. 그대에게 뭐라고 해야 좋을까?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지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것이다. 의무가 길을 인도하여 주지않는 자유란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어디를 둘러보나 낮선 고장에서 택해야 하는 한 갈래 길과도 같아 사람은 저마다 거기서 [자기]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발견이란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하여서 할 따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의 땅에서 더듬는 가장 희미한 발자취일지라도 그보다는 아직 덜 불안할 정도이다. 그늘진 수풀들이 우리를 이끌며, 아직도 말라 버리지 않은 샘터의 신기루들....... 그러나 차라리 샘물들은 우리의 욕망이 흐르게 하는 곳에 솟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지방은 우리가 다가감으로써 그것을 형성함에 따라 존재하게 되는 것이며, 주위의 풍경들은 차츰차츰 우리의 걸음 앞에 전개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지평선 끝을 보지 못한다. 우리들 곁에 있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항시 변형되는 외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중대한 문제에 비유를 들어 말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들은 모두 신을 발견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을 찾아볼 수 있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디로 향하여 우리들의 기도를 드려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렇게 마음속으로 말하게 된다. 신은 가는 곳마다 있으며, 눈에 뜨이지 않는 그분은 아무 곳에나 아니 계신 곳이 없다고. 그리하여 아무 데서나 무턱대고 무릎을 끓는 것이다.

  나타나엘이여, 그대로 제 손에 든 등불을 따라 길을 더듬어가는 사람이나 다름없이 될 것이다.

  어디에 가든지 그대는 신밖에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신이란 우리들 눈앞에 있는 것]이라고 메날끄는 말하였다.

  나타나엘이여, 그대는 모든 것을 지나치는 길에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곳에도 멈추지 말라. 오직 신만이 덧없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명심해 두어라.


  [중요성]은 그대의 시선 속에 있어야 하고 보는 것 속에 있어서는 아니될지어다.


  그대가 [확연한] 지식으로서 그대의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은 이 세상의 종말에 이르도록 그대와는 확연히 따로 남게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 것에 그토록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가? 욕망에는 이득이 있고 또 욕망의 만족에도 이득이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욕망은 증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거니와, 나타나엘이여, 욕망의 대상을 갖는다는 그 언제나 허망한 소유보다도 어떤 욕망이든지 욕망 그 자체가 나를 더욱 풍부하게 하여 주었느니라.


  수많은 감미로운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나타나엘이여, 나는 나 자신을 소모하였다. 그것들의 찬란한 빛은, 내가 그것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태우던 사랑의 불길 때문이었다. 나는 지칠 줄을 몰랐었다. 모든 열정이 나에게는 사랑의 소모, 감미로운 소모였던 것이다.

  이단자들 중에도 가장 이단자이던 나는 동떨어진 의견들, 사상의 극단적인 우회나 엇갈리는 색다른 사고들에 항시 마음이 끌렸다. 어떤 사람이거나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가 남들과 다른 점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마음속으로부터 공감이라는 것을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다만 공통적이 감동의 인식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타나엘이여, 공감이 아니고 사랑이어야 한다.


  행동의 선악을 [판단]하지 말고 행동할 것. 선인가 악인가 개의하지 말고 사랑할 것.

  나타나엘이여, 나는 그대에게 열정을 가르쳐 주마.

  평화로운 나날보다는, 나타나엘이여, 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나는 죽어 잠드는 휴식 이외의 다른 휴식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생전에 만족시키지 못한 모든 욕망, 모든 정열이 나의 사후까지 살아 남아서 나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내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것을 이 땅 위에서 털어놓고 나서 더 바랄 것 없는 완전한 [절망] 속에 죽기를 나는 [희망]한다.


  공감이 아니고, 나타나엘이여, 사랑이어야 한다. 그대도 알터이지만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이따금 슬픔이나 근심, 괴로움에 내가 동정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런 것들을 좀처럼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다. 인생의 근심은 각자에게 맡겨 두라.

  (헛간에서 탈곡기가 돌고 있어서 오늘은 쓸 수가 없다. 어제 보았는데 배추씨를 두들겨 털고 있었다. 깍지가 날고 씨앗이 땅에 굴러떨어지곤 했다. 먼지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떤 여자가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예쁘게 생긴 두 사내아이가 맨발로 씨앗을 줍고 있었다.

  이 이상 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어 나는 눈물이 난다.

  별로 할 말이 없을 때는 글을 쓰는 법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썼다. 그리고 같은 주제로써 다른 이야기들을 또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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