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6)

그림자세상 2009. 12. 29. 23:39


  나타나엘이여, 그대의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책들을 불태워 버려야 한다.


          내가 불질러 버린 것들을 찬양하여

 

                                       롱 드


   학교의 책상 앞에서

   조그만 걸상 위에 앉아 읽는 책들이 있다.

   거닐며 읽는 책들도 있고

   (책의 크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숲에서, 어떤 것은 다른 전원에서 읽도록 되어 있고

   그리하여 시세롱은 말했으니----

   [그들은 우리와 더불어 전원에 있느니라]하고.

   마차 속에서 읽은 책도 있고

   헛간 속 꼴 위에 누워서 읽은 것도 있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한 책이 있는가 하면

   영혼을 절망케 하기 위한 책도 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신에게 다다를 수 없게 하는 책들도 있다.


   개인의 서고 속에밖에는 꽂아 둘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권위 있는 많은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은 책들도 있다.

   양봉에 관한 이야기만 쓰여 있어

   어떤 이들에겐 너무 전문적이라고 생각되는 책도 있고

   자연에 관하 이야기가 어떻게 많던지

   읽고 나면 산보할 필요도 없어지는 책도 있다.

   점잖은 어른들에게는 멸시를 받지만

   어린이들을 흥분케 하는 책들도 있다.


   문집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무엇에 관해서나 훌륭한 말을 모조리 수록한 것도 있다.

   인생을 사랑하게 하여 주려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쓰고 난 뒤에 저자가 자살하였다는 책도 있다.

   증오의 씨를 뿌리고

   뿌린 것을 스스로 거두는 책들도 있다.

   희열이 넘치고 그지없이 감미로와

   읽을 때 찬란하게 빛나는 듯한 것도 있다.

   우리보다 순결하며 우리보다 훌륭하게 살아 간 형제들처럼 사랑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상한 글씨로 쓰여져 있어서

   많이 연구해 봐도 통 이해할 수 없는 책들도 있다.

  나타나엘이여, 이 모든 책들을 언제 우리는 다 불태워 버리게 될 것인가!


   네 푼짜리도 못 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엄청나게 값진 책들도 있다.

   왕과 왕후의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있다.


   정오의 팔랑거리는 나뭇잎 소리보다도

   더 부드러운 말로 된 책들도 있다.

   파트모스란 섬에서 장이

   쥐처럼 먹었다는 책이지만

   나는 차라리 나무딸기가 좋다.

   그 책 때문에 그의 오장육부는

   쓰디쓴 맛으로 가득히 차서

   그 후 그는 많은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나타나엘! 그 모든 책들을 언제 우리는 불살라 버리게 될 것이냐!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나의 맨발이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먼저 감각이 앞서지 않은 지식은 그 어느 것도 나에게는 소용이 없다.

  이 세상에서 아늑하게 아름다운 것치고 대뜸 나의 애정이 그것을 어루만져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라곤 나는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정답고 아름다운 대지여, 그대의 꽃핀 표면은 희한하구나! 오, 나의 욕망이 들어박힌 풍경! 나의 탐색이 거닐고 다니는 활짝 열리 고장, 물 위에 늘어진 파피루스나무, 줄지은 길, 강 위에 휘어진 갈대들, 숲 속에 트인 빈 터, 나뭇가지 사이로 나타나는 벌판, 무한한 약속, 나는 복도처럼 바위들 또는 초목들 속으로 뚫린 길을 거닐었다. 눈앞에 전개되는 봄의 풍경을 나는 보았다.


  그날부터 나의 생의 모든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선물처럼 새로운 맛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거의 끊일 줄 모르는 열정적 경탄 속에 살았다. 어느덧 도취경에 이르러 나는 일종의 황홀감 속에서 거닐기를 즐겨 하였었다.


  그렇다, 입술 위에 떠오르는 모든 웃음에 부딪칠 때마다 입맞추고 싶었다. 뺨 위에 번지는 홍조를 볼 때마다, 눈 속에 고이는 눈물을 볼 때마다 나는 그것을 마시고 싶었다. 나뭇가지가 나에게로 기울여 주는 과일은 모조리 그 과육을 깨물어 먹고 싶었다. 주막에 이를 때마다 굶주림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어느 샘물 앞에서나 갈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른 샘물 앞에 설 적마다 다른 갈증들이--나의 갖가지 다른 갈망들을 표현하기 위하여 또 다른 말들이 있었으면 했다.


  걷고 싶은 욕망, 거긴에 길이 열리고

  쉬고 싶은 욕망, 거기에선 응달이 부르며

  깊은 물가에서는 헤엄치고 싶은 욕망,

  침대 곁에 설 때마다 사랑이나 또는 자고 싶은 욕망.


  나는 대담하게 모든 것에 손을 내밀고, 나의 욕망의 모든 대상에 대하여 나에게는 권리가 있다고 스스로 믿었다(하지만 나타나엘, 우리가 바라는 것, 그것은 소유라기보다는 사랑인 것이다). 나의 앞에서 모든 것이 무지개처럼 찬연하고 모든 아름다움이 나의 사랑의 옷을 입고 아롱져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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