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4)

그림자세상 2009. 12. 10.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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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얼마나 나는 밤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던가. 아아, 창이여! 그토록 창백한 빛발이 달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개가 드리워 마치 샘물인 양---나는 그것을 입으로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아아, 창이여! 얼마나 여러 번 나의 이마가 너희들의 서늘한 유리에 기대어 열을 잃었으며, 얼마나 여러 번 열로 인하여 타는 듯한 침대에서 발코니로 뛰어나가 넓디넓은 고요한 하늘을 우러러 볼 때 내 욕망들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던가.

  지난 날의 열들이여, 너희들은 나의 육체를 탕진하고 말았다. 그러나 넋을 신으로부터 떼어 놓는 아무것도 없을 때, 넋은 얼마나 고갈되고 말 것인가! 나의 외곬으로 달리는 신에 대한 찬양은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그 때문에 송두리째 얼이 빠졌었다.

  그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불가능한 넋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라고 메날끄는 나에게 말하였다.

  종잡을 수 없는 황홀의 첫 나날이 지난 뒤에는---아직도 메날끄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지마---늪을 건너는 것 같은 불안한 기대의 시기가 닥쳐 왔다. 무거운 졸음에 빠져 아무리 잠을 자도 깨어날 수 없었다.  식사를 하고는 눕곤 하였다. 잠을 자고 나면 더 피로를 느끼며 눈을 뜨는 것이었다. 무슨 변모를 앞둔 것처럼 정신은 마비된 채.

  생명체의 은밀한 작업, 내면의 태동, 미지의 생명 창조, 난산. 몽롱한 의식, 기대. 번데기처럼, 선녀처럼 나는 잤다. 내 속에서 새로운 존재가 형성되어 가는 대로 나는 맡겨 두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될 그 존재는 이미 나와는 다른 것이었다. 모든 빛이, 초록빛의 물 속을 거쳐 오듯이 나무 잎사귀와 가지를 통하여 내게로 스며 오고있었다. 술취함이나 심한 현기증과도 흡사한, 몽롱하고 무기력한 지각---아아, 어서 급격한 발작이거 질병이건 격심한 고통이라도 어서 와 주렴---하고 나는 애원하였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무겁게 구름이 얽혀 드리운 뇌우의 하늘과도 같았다. 숨도 쉬기 어려운 그러한 하늘 밑에서는, 모든 것이 울적하게 창공을 뒤덮어 가리고 있는 그 침침한 가죽 물자루를 위하여서 번갯불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이여, 얼마나 너희들은 계속되려는가? 그리고 너희들이 끝난 뒤에 과연 살아 갈 만한 기력이 남게 될 것인가---기다림! 무엇의 기다림이란 말인가?


이렇게 나는 외쳤다.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을 무엇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 않는 무엇이 우리에게서 가능할 것이냐?

  아벨의 출생, 나의 약혼, 에리크의 죽음, 나의 생활의 혼란, 그러한 일들도 그 무감각 상태를 끝내 주기는 커녕 더욱 더 그 속으로 나를 몰아넣는 것 같았다. 그처럼 마비 상태는 나의 복잡한 상념과 나의 결단성 없는 의지로부터 오는 듯 하였다. 나는 축축한 땅에서 식물처럼 언제까지나 자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따금 쾌락이 고통을 이겨 주려니 생각하고, 나는 육체의 탕진 속에서 정신의 해방을 찾았다. 그리고는 다시 긴 시간을 잠자며 지내는 것이었다. 마치 번거로운 집 안에서 한낮에 더위에 졸다가 뉘어져 잠든 어린이처럼.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야 나는 깨어나곤 하였다. 몸에 땀이 흐르고, 심장은 두근거리며, 머리는 흐리멍덩했었다.

  닫힌 덧문 틈으로 스며들어 잔디밭의 푸른 반사광을 흰 천정에 던져 주는 빛, 그 황혼만이 나에게는 다사로왔다. 그것은 나뭇잎들과 물 사이로 흘러들어 부드럽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빛, 오랫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끝에 동굴 어귀에서 어른거리는 것을 보는 그러한 빛과도 같았다.

  집 안의 소음이 어렴풋이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소생하는 것이었다. 미지근한 물로 몸을 씻고 권태에 못 이겨 들로 나가곤 했었다. 정원의 벤치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저녁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말하기도, 이야기를 듣기도, 글을 쓰기도 싫고 줄곧 피곤하기만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읽는 것이었다.


..... 앞에 보이는

황량한 길

목욕하는 바다새들

날개를 펼치고.......

나 살아야 할 곳 바로 여기로다........

......내가 붙들려 있는 곳은

숲 속의 나무 잎새 그늘

떡갈나무 밑 땅 밑의 동굴

이 토굴집은 싸늘하여라.

나는 아주 지쳐 버렸다.

골짜기들 어둡고

언덕은 높아

나뭇가지들의 슬픈 울타리

가시덤불에 덮이고---

즐거움 없는 거처로다.


  가능하기만 할 뿐 아직 가져 보지 못한 생명의 충일감이 이따금 엿보이더니 다시 여러 번 눈앞에 나타나 점차로 머리를 떠나지 않게 되었다. 아아! 어서 햇빛의 문이 열렸으면, 하고 나는 외치는 것이었다. 끊임없는 이 보복의 도가니 속에서 활짝 열려 주었으면!

  나의 온 존재가 새로운 것 속에 잠겨야만 할 것 같았었다. 나는 제2의 청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나의 눈이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할 것. 나의 눈으로부터 서적에서 받은 티를 씻어 버리고, 지금 우러러 보는 저 창공처럼---아까 비가 내리고 하늘은 맑게 개었다---내 눈을 더욱 청명하게 만들 것......

  나는 병이 들었다. 여행을 하고 메날끄를 만났다.

  나의 신기스러운 회복은 참으로 나에게는 재생이었다. 나는 새 하늘 밑에 완전히 온갖 것이 새로와진 가운데 새로운 존재로서 재생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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