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on everything

[세계의 끝 여자친구] - 김연수

그림자세상 2009. 9. 20. 17:14

"...내가 아는 나의 얼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웃음을 머금은 케이케이의 눈동자에 비친 얼굴이다. 양쪽 눈동자에 하나씩, 모두 두 개의 얼굴. 지금의 내 얼굴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런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분명한 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해피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누군가는 나와 자신과 같은 꿈을 꾸리라는 것을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간절히 원하는 게 하나씩 있었다. 그게 단순한 욕정에서 시작하든, 아니면 사회적인 분노에서 비롯하든."

                                                                                       --"기억할 만한 지나침"

 

 

"...마흔세 살. 내 나이와 같더군. 마흔세 살이란 이런 아니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문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까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 거야."

           --"세계의 끝 여자친구"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일생에 단 한 번은 35미터에 달하는 신의 나무를 마주한 나무학자 왕잔의 처지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룡과 함께 살았다는, 화석으로만 남은, 하지만 우리 눈앞에서 기적처럼 살아 숨쉬는 그 나무."

                                                                                                                                 --"세계의 끝 여자친구"

 

"...우리는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우리의 꿈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이뤄지지 않은 소망들은 모두 그처럼 대단한 것들이었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엄마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와 고통을 함께 한 것은 주기적으로 엄마의 목속으로 들어가던 진통제뿐이었다. 고통 앞에서는 평생 가졌던 신앙마저도 진통제가 먼저 몸속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엄마 덕분에 삶과 죽음 사이에는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고통. 엄마가 죽던 그 순간까지 나는 정신을 잃은 엄마의 손을 어루만지며 침이 마르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으나,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엄마의 고통만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보다도 죽음이 더 이해하기 쉬운 모양인지, 막상 엄마가 숨을 거둔 뒤에는 그간 병상에 누워 있던 엄마와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고통은 분명히 엄마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죽음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날, 엄마의 몸이 병실에서 차가운 영안실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그 노을을 봤다. 아니, 그 노을을 봤다기보다는 그 노을이 보였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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