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on everything

옛 그림 보는 법(2)-오주석

그림자세상 2009. 7. 1. 17:07

  조형을 언어로 바꿀 때 그것은 마음속에 간직하기 쉬운 그 무엇으로 바뀐다. 그림을 공부하는 학자들은 그런 작업을 기술(description)이라고 부른다. 기술은 비단 회화뿐만 아니라 모든 조형물을 파악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기술을 통해서 확보된 기억은 한참 뒤에까지 살아 남아 이와 유사한 작품을 보았을 때 즉각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산 지식으로 활용된다. 처음 발견된 김홍도의 작품을 보고 "아, 김홍도로군"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훈련의 덕택이다. 물론 이런 기억은 역시 작품을 손수 베껴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조형에 관한 한 언어는 손보다 성능이 더 열등한 '뇌'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고 기술은 모사에 버금가게 '작품 내용을 의식하면서 자세히 뜯어보는' 행위이다.  

 

  셋째, 오래 두고 보면서 작품의 됨됨이를 생각한다. 오래 보아서 좋은 작품이 정말 좋은 작품이다. 여기서 오래라는 말은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 또는 몇 달 또는 몇 년에서 한 인간의 평생에 걸친 것일 수도 있다. 훌륭한 그림은 진정 훌륭한 인간과 같다. 만나면 만날수록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흐르는 세월 속에서 가치가 깎이기는커녕 오히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더욱 진가를 발한다. 게다가 사람처럼 늙거나 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떤 작품은 첫눈에 아주 매력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매력이 줄어들고, 반대로 어떤 작품은 첫 대면에서는 별로 특별한 관심을 끌지 않았는데 보면 볼수록 마음이 끌리는 깊이가 있다.

  과연 무엇이 예술품을 영원하게 하는가? 그것은 끝까지 풀리지 않는 신비일는지 모른다. 그림은 한눈에 전체가 다 보인다. 그림의 좋고 나쁨은 한순간에 파악된다. 그런 점에서 그림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늘 부분 부분 쫓아가며 감상할 수밖에 없는 음악과 다르다. 물론 음악 감상에서도 전체 악곡의 구조와 인상은 반복과 기억을 통하여 줄곧 확보되지만 그림의 직접성에 비하면 아무래도 약하다. 그림이 전체적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정지된 예술이기 때문이다. 반면 음악이 정지되어 있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다. 그런데 그림은 정지된 영상이기 때문에 음악과는 달리 수시로 전체와 다양한 세부를 번갈아가면서 비교 감상 할 수 이는 이점을 갖는다.

  그림 감상은 어찌 보면 음악 감상보다 훨씬 쉽고 또 어찌 보면 훨씬 어렵다. 쉬운 이유는 음악과는 달리 한눈에 다 보이기 때문이고, 어려운 이유는 음악처럼 시간을 따라 펼쳐지는 세부를 자동적으로 음미 하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악은 매순간 주의 깊게 듣고만 있으면 저절로 훌륭하게 감상된다. 그러나 그림은 전체를 한꺼번에 보고 난 다음에 어디로 시선을 옮겨야 하는다? 흔히 걸작은 한 획의 붓질도 덧댈 수가 없고 또 한 획의 붓질도 덜어낼 수 없다고 한다. 그 완벽한 조화, 그리고 작품이 표상하는 영원함은 전체로서 화폭 속에 늘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자세히 보면 주제, 소재, 상징, 구도, 필치, 색채, 통일성, 다양성, 운율감, 재질감, 원근감 등등 다양한 요소로 구축되어 있다.

  사실 복잡미묘한 예술 세계의 깊이는 말로 설명될 수 없다. 그림이건 음악이건 건축이건 또는 무용의 한 장명이건 그것은 그것 자체일 뿐 언어나 다른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그림은 정지된 공간 속에서 앞에서 말한 수많은 갈래의 여러 측면으로 각각 관찰되고 음미된다. 뿐만 아니라 주제는 구도를 결정하고, 구도는 필치를 결정하고, 필치는 운율감을 결정하는 것처럼 각각의 측면은 또다른 측면과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아주 작은 부분조차 전체를 반영한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한 세포 속에 전체 인간을 복제 할 수 있는 정보가 간직되어 있다는 사실과 비겨볼 만하다. 여기에 그림이 갖는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다.

  그림을 보는 방법은 사실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마다 자기 삶의 내용에 비추어서, 자신의 교양과 안목과 기분에 맞추어서 볼 수 있는 것이 그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익히 보았던 작품 속에서 긴 세월이 흐른 뒤에 감상자 자신이 깜짝 놀랄 만한 전혀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일도 적지 않다. 보는 이의 삶과 교양, 안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또 단기적으로로도 볼 때마다 달라진 감상자의 기분이 작품 보는 눈을 새로운 각도로 조정하기도 한다. 새롭게 느껴지는 작품의 경우라면 신선한 맛을 즐기면 그만이다. 반면 어떤 작품들은 늘 같은 모습으로 다가와 그 변함없음이 좋다는 경우도 있다. 이때 작품 속의 어떤 면모가 이러한 만족감을 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어 알기보다 감상자 스스로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자기만의 즐거운 몫이다. '오래 보면서 작품의 됨됨이를 이모저모 생각하는 것'은 바로 즐거운 그 자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옛 그림 속에서 지나간 역사를 볼 수 있다. 옛 그림 속에는 다치지 않은 옛 그대로의 자연이 있고, 그것을 보는 옛 사람들의 눈길이 스며 있고, 그들의 어진 마음자리가 담겨 있으니, 한마디로 말해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재질이 종이거니 비단이거나 간에 옛 그림은 하나의 물질 자체로서 아련하게 배어있는 지난 세월의 향내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아꼈던 많은 인물들의 고상한 입김과 정성스런 손때가 묻어 있다. 어떤한 물건도 저절로 수백 년이나 보관되는 일은 없다. 또 한 폭의 작은 그림에는 옛 문학, 옛 건축, 옛 음악, 옛 풍속, 옛 의상, 옛 글씨 등 여러 분야가 고루 관여하고 있으니 거기에 실려 있는 것들을 모두 살피자면 참으로 끝이 없다. 여기에 회화 예술만이 가지는 독자적인 깊이가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종국에는 작품을 그린 화가라는 한 인격체의 독특한 빛깔로 물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그림에서 한 분의 그리운 옛 조상을 만날 수 있다.

 

  그림을 보는 방법은 사실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마다 자기 삶의 내용에 비추어서, 자신의 교양과 안목과 기분에 맞추어서 볼 수 있는 것이 그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익히 보았던 작품 속에서 긴 세월이 흐른 뒤에 감상자 자신이 깜짝 놀랄 만한 전혀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일도 적지 않다. 보는 이의 삶과 교양, 안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또 단기적으로로도 볼 때마다 달라진 감상자의 기분이 작품 보는 눈을 새로운 각도로 조정하기도 한다. 새롭게 느껴지는 작품의 경우라면 신선한 맛을 즐기면 그만이다. 반면 어떤 작품들은 늘 같은 모습으로 다가와 그 변함없음이 좋다는 경우도 있다. 이때 작품 속의 어떤 면모가 이러한 만족감을 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어 알기보다 감상자 스스로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자기만의 즐거운 몫이다. '오래 보면서 작품의 됨됨이를 이모저모 생각하는 것'은 바로 즐거운 그 자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옛 그림 속에서 지나간 역사를 볼 수 있다. 옛 그림 속에는 다치지 않은 옛 그대로의 자연이 있고, 그것을 보는 옛 사람들의 눈길이 스며 있고, 그들의 어진 마음자리가 담겨 있으니, 한마디로 말해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재질이 종이거니 비단이거나 간에 옛 그림은 하나의 물질 자체로서 아련하게 배어있는 지난 세월의 향내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아꼈던 많은 인물들의 고상한 입김과 정성스런 손때가 묻어 있다. 어떤한 물건도 저절로 수백 년이나 보관되는 일은 없다. 또 한 폭의 작은 그림에는 옛 문학, 옛 건축, 옛 음악, 옛 풍속, 옛 의상, 옛 글씨 등 여러 분야가 고루 관여하고 있으니 거기에 실려 있는 것들을 모두 살피자면 참으로 끝이 없다. 여기에 회화 예술만이 가지는 독자적인 깊이가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종국에는 작품을 그린 화가라는 한 인격체의 독특한 빛깔로 물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그림에서 한 분의 그리운 옛 조상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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