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on everything

옛 그림 읽기(1)-오주석

그림자세상 2009. 7. 1. 00:36

  옛 사람들은 그림 감상을 일러 '간화看畵', 즉 '그림을 본다'는 말보다 '독화讀畵', 곧 '그림을 읽는다'는 말 쓰기를 더 좋아하였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받아본 제가 이상적이 스승께 올리는 편지에서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음'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하고 쓴 것도 그 일례다.

  그림을 '읽는' 것과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우선 '본다'는 것'은 겉에 드러난 조형미를 감상한다는 뜻이 강한 데 비하여, '읽는다'는 말은 동양의 오랜 서화일률(書畵一律)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글씨와 그림이 한가락이므로 보는 방법도 한가지로 '읽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림에서 읽히는 내용 또한 형상보다는 그린 이의 마음이 주가 되니 문인화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옛 그림 가운데서도 화첩(畵帖)은 형태가 서양화와 비슷하다. 그런데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면 화면을 세로로 접어 책처럼 간수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림 한복판에 세로로 접힌 금이 생기는데 화면에 보이는 이런 자국은 현대인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훌륭한 작품의 한중간을 왜 꺾고 접어서 갈무리하였을까? 옛 그림은 '보기' 위한 것이기보다 '읽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서양식 가로쓰기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읽는다. 이때 시선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진행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기록한 오선지 악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읽고 적는다. 그러므로 그림 보는 사람의 잠재적 시선은 먼저 좌상으로 갔다가 대각선을 따라 우하로 흘러내린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시선이 닿은 곳은 왼편 상단이다. 그 다음은 알파벳 X자를 쓰듯이 왼쪽 획의 흐름을 따라서 보고 이어서 오른 획의 방향을 따라 보는 것이다.

 

  옛 그림은 이와는 달리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눈길을 옮겨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즉 우상에서 좌하로 이어지는 대각선의 흐름을 따라 보는 것이다. 조상들은 한문이건 한글이건 그렇게 쓰고 읽었으며, 옛 악보인 정간보(井間譜) 역시 이 같은 방식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옛 그림에서 중요한 자리는 오른쪽 상단이고, 왼쪽 하단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우상에 제목을 적고 좌하에 작가의 관지(款識)를 넣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옛 그림을 서양 사람 습관에 따라 X자 모양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서양 그림은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우리 옛 그림을 그렇게 보는 것은, X자에 '아니다'라는 뜻이 있는 것처럼 '그릇된' 감상법이다. 우리 그림은 모름지기 한자 '풀 벨 예(乂)' 자의 획순처럼, 먼저 삐침을 따라서 보고, 이어 파임을 좇아가듯이 감상해야 한다. 예(乂) 자는 '다스린다', '조리가 있다'는 뜻으로도 새겨진다. [상서尙書] <홍범洪範> 편에는 '종작예(從作乂)', 즉 '이치를 따르니 조리가 있다'는 글귀가 있다. 이 말이 바로 우리 옛 그림을 보는 '옳은' 방법을 시사한다고 생각하면 편리할 것이다.

 

  애초 옛 그림의 표구 형식부터 족자(族子)나 병풍차(屛風次)처럼 내리닫이가 많은 이유는 모두 글 쓰는 방식을 따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어느 글을 보니 사람의 눈이 가로로 길게 생겼으므로 서양식 가로쓰기가 전통적인 세로쓰기보다 더 과학적인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 저자는 글을 읽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옛 글과 옛 그림은 원래 위아래로 약간씩 고개를 끄덕이며 보는 것으로, 그것은 풍류도 있어 보이려니와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오히려 좌우로 눈동자를 굴리거나 고개를 도리질하는 편이 더 체신 없어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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