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 옛 그림을 잘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이기도 하고, 또 나 스스로도 여러 선생님들과 선배들로부터 배운, 또는 스스로 터득한 몇 안 되는 지식 가운데 가장 마음 뿌듯했던 경험이었기에, 감히 옛 그림의 감상 요령을 설명하기로 한다. 우선 가장 커다란 두 가지 원칙이 있으니 그것은 '옛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옛 사람의 마음으로 읽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옛 그림 읽기"와 "옛 그림에 깃든 마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감상 요령의 첫째는 좋은 작품을 무조건 많이, 자주 보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살아 있는 생명체다. 그러므로 이성으로 접근해서 지식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감상자 개개인의 체험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서로 많이 다른데, 그것은 대체로 우리가 경험한 삶의 내용이 서로 다른 데서 온다. 아무리 클래식 음악이 훌륭하고 고상하다고 학교에서 배웠어도, 또는 애국심의 발로로 우리 전통 음악을 사랑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보아도, 일상생활 속에서 그것들을 들을 기회가 적으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기란 힘들어진다.
반면에 유명한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인 음악은 실제로 감상하기 어려운 난곡인 경우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한다.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대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시그널 음악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 대하여 경계심을 풀고 친근감을 느끼며 결국은 좋아하게 된다. 누구라도 그리워하게 마련인 고향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친근하게 느끼니까 그 내용까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는 오랜 진리이다.
대학에서 옛 그림에 대한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작품은 김홍도의 풍속화였다. 그들에게 초등학교 이래로 가장 친숙한 옛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바로 옛 그림을 잘 감상하기 위한 첫번째 비결은 '좋은 작품을 무조건 많이, 자주 보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안목은 설령 지적인 것이 아닌 막연한 것일지 몰라도 오히려 허황된 권위로 포장된 기성 학계의 틀에 박힌 설명보다 훌륭한 것이다. 그것은 작품을 자기만의 눈으로 소화하고 즐길 수 있는 자율적인 역량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둘째, 작품 내용을 의식하면서 자세히 뜯어본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보았지만 못 보았고 들었지만 못 들었다'는 정황이 있음을 종종 경험한다. 한문의 '시이불견시이불견 청이불문청이불문'이 그 말이고, 영어에도 see와 look at, hear와 listen to라는 전혀 다른 표현이 있다. 주의 깊에 살펴본 사람이 감탄해 마지않는 작품도 건성으로 그저 획 지나쳐 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게 마련이다. 음악에 골똘히 집중해서 귀 기울이는 사람은 낮은 베이스 음 하나가 바뀌는 순간에도 깊은 감동을 받지만 엉뚱한 데 마음을 쓰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음악이 자동차 소음으로 시끄럽게만 느껴질 것이다.
작품 내용을 의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품을 내 손으로 직접, 있는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이다. 손은 '신체 바깥으로 드러난 뇌'라는 말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임모(臨摹), 즉 베끼는 행위(copy)가 화가의 가장 큰 스승이다. 그것은 작가의 기술적 비밀을 공유케 하고 창작 과정에 그대로 감정이입되도록 함으로써 작가 영혼의 미묘한 숨결까지도 추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체험은 참으로 가슴 떨리는 일이다. 그러나 임모할 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림은 손은 물론이고, 눈과 마음만으로도 베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상자 자신이 마치 화가인 양, 그림의 부분 부분과 획 하나 점 하나를 그려나가듯이 차근차근 살펴보고 또 내용을 혼잣말로 중얼거려 본다면 작품의 조형 세계는 우리 뇌를 통과해서 감상자 개개인의 마음속에 각별한 각인을 남기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은 눈만 감으면 그 모습이 절로 선하게 떠오를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즉 떠오르는 것은 대상을 향한 넘쳐나는 마음일 뿐이고, 그 모습 자체를 재현하는 능력이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서, "계란형 얼굴에 이마가 시원하고 결 고운 가는 눈썹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을 고르게 덮었다. 쪽 곧은 콧등은 단정하고 콧방울도 반듯하다"고 했을 때, 또 거기에 "인중은 약간 긴 편이고 입은 코보다도 작은데 입술가가 약간 들려 보일 듯 말 듯한 표정이 살포시 담겨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좀더 구체적으로 <미인도>를 떠올릴 수 있다.
'Texts and Writings > on everyth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감....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 (0) | 2009.07.24 |
---|---|
옛 그림 보는 법(2)-오주석 (0) | 2009.07.01 |
옛 그림 읽기(2)-오주석 (0) | 2009.07.01 |
옛 그림 읽기(1)-오주석 (0) | 2009.07.01 |
제주-2007 by Bruno Barbey (0) | 2009.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