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on everything

옛 그림 읽기(2)-오주석

그림자세상 2009. 7. 1. 00:53

  붓글씨 하는 분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굳이 길게 설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연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9미터에 이르는 이인문의 걸작 두루말이 <강산무진도> 전체를 다 펴 보인 적이 있었다. 이때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구경을 하는데 한결같이 왼쪽 끝을 향하는 것이었다. 작품을 꽁무니부터 거슬러가며 보는 격이라 한편으로 어이가 없으면서 한편으로는 딱했다. 그러나 잘못은 어린 학생 쪽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작품 위에 써서 걸어놓았던 해설판이 가로쓰기였기 때문이다.

 

  동서양에 따른 감상 요령의 차이는 다방면으로 확대돼서 아주 큰 문제가 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걸려 있는 현판은 조선 왕조 숙종 임금이 쓴 글씨다. 그런데 원래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 것을 요즘 사람들 읽기 좋으라고 좌에서 우로 순서를 바꾸었다. 때문에 글자 획간의 균형이 무너져버려 어색하기 짝이 없다. 또 우리나라 고서화 전시 도록을 보면 대부분 표지가 왼편인 서양식 좌철책이다. 모두 꽁무니부터 작품을 보게끔 한 것이다.

 

  옛 그림 전시장엘 가보아도 사정은 같다. 많은 경우 입구에서 왼편으로 돌게끔 동선을 설정해서 작품을 거꾸로 보게 해놓았다. 굳이 오른편부터 보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는 동선을 따르는 많은 서양식 관람자들과 머리를 부딪치게 된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교양 없고 무지한 사람이 되어 눈흘김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다. 하지만 전시된 작품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모처럼 TV에서 옛 그림을 방영하고 해설하는 걸 보면 카메라 앵글은 영락없이 그림의 세부를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훓어간다. 이 경우 작품 감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작품을 '읽는' 동서양의 방식 차이는 아주 작은 듯 하나,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이처럼 예상 밖으로 엄청나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애초 가로쓰기식으로 보면 그림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옛 화가들에게는 세로로 읽고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으므로, 보는 이도 당연히 우상에서 좌하 쪽으로 감상해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구도를 잡고 세부를 조정하고 또 필획의 강양까지도 조절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 실린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를 서양식으로 X자처럼 보려고 하면 시선이 그림 곳곳에서 덜컹덜컹 부딪쳐서 작품의 이해가 방해받는다는 것을 누구라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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